[기자단상]울산독립운동기념관
[기자단상]울산독립운동기념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2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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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는 리콴유 (1923~201 5)도 3년 반 동안의 일본군 점령시기를 겪었다. 영국령이던 싱가포르는 1942년 2월 일본군에게 함락됐다. 리 전 총리가 대학생이었을 때였다.

그는 생전에 남긴 회고록에서 일본군 점령 시기의 경험을 생생하게 술회했다. 그는 “일본군의 야수성과 무력을 체험하며 과연 무엇이 상전과 하인을 결정짓고 무엇이 사람을 복종하게 하고 더 나아가 충성하게까지 만드는지를 확실하게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 짧은 기간에 싱가포르 사람들이 일본군의 통치 체제에 순응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일본군이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우리는 그들의 신을 섬기고 그들의 행동양식을 흉내내게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흉포한 일본군의 압제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며 한국을 언급했다. 그는 “한국인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며 “일본은 한국인의 풍습, 문화, 언어를 말살하려 했지만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한국인은 굳은 결의로 야만적인 압제자에게 항거했다”고 기록했다. 거기다 “일본은 수많은 한국인을 죽였지만 그들의 혼은 결코 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또는 일본과 전혀 관계가 없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독립운동의 가치는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

울산은 우리의 독립운동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두 분을 배출했다. 고헌 박상진 의사와 외솔 최현배 선생이다. 고헌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광복회 총사령으로 공화주의를 표방하며 항일무력투쟁을 이끌었다. 외솔은 한글을 목숨처럼 여기며 일제의 조선어말살정책에 저항했다. 두 분 이외에도 울산출신 독립유공자는 더 있다. 국가보훈처에서 훈포장한 분만 95명이다. 병영과 남창, 언양에서 일어났던 3·1 만세운동 관련 유공자가 53명으로 가장 많다.

최근 광복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회의에서 울산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정한 독립운동가 한 분이나 3·1운동과 같은 한 건의 운동을 기념하는 사업이 아니라 울산에서 이루어진 독립운동 전반을 기념하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학술회의는 고헌 박상진 의사 추모사업회에서 주최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고헌의 기념사업을 전개하자는 주장에 앞서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이다. 고헌의 업적에 비하면 고헌 기념사업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 가운데 나온 제안이어서 뜻깊다 하겠다.

고헌의 증손자로 송정동 고헌생가를 관리하고 있는 박중훈 선생도 같은 주장을 일관되게 하고 있다. 울산의 많은 독립운동가 가운데 몇 분에게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이다.

현재 국가보훈처가 국가현충시설로 관리하거나 지원하고 있는 독립운동 관련 기념관은 53개소이다. 이 중 절반이 넘는 31개소가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 등의 개인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또 독립운동의 특정 계열이나 주제를 대상으로 한 기념관도 있다. 광주학생운동기념관이나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등이다.

지자체 단위의 독립운동 전반을 대상으로 한 기념관으로는 안동에 있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과 밀양독립운동기념관, 부산광복기념관 등 6개소가 있다. 전남 완도군 소안면에는 면단위의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운영되고 있다.

울산독립운동기념관 건립운동은 범시민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특정 단체나 개인이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강귀일취재2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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