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가 뭔데?
지가 뭔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2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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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종로 3가 국일관 옆, 피맛골 골목길에는 실비집들이 많다. 엊그제 가장 오래된 진짜 실비집에 노인들 넷이 막걸리 양재기를 들고 잔들을 부딪친 뒤, 모두 주~욱 들이켰다. 그리고 생선찌개 안주를 한 숟가락씩 삼키며 쩝쩝거렸다. 한 노인이 아직도 왼손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마디에 남아있는 당구의 파란색 초크 흔적을 내려다보다가 ‘그놈의 뉴스만 보지 않았어도 오늘은 내가 장원인데…’하며 아쉬워하였다. 그 옆의 다른 노인네 한 사람이, ‘야, 너 지금 몇 살이냐? 칠십하고도 여섯 살이다. 아직도 뉴스를 보냐?’ 이 말에 그 옆의 또 다른 노인네가, ‘그래. 나는 투 세븐(77)이다. 럭키, 럭키이다. 그래도 가끔은 본다. 여성동무들이 골프 시합에서 우승했을 때!’ ‘그래? 넌 아직도 골프를 칠 수 있으니 부럽다. 박 동무!’ ‘사실, 나도 그놈의 뉴스 때문에 아까 당구를 잡쳤다.’하며 투 세븐 박 노인이 술이나 들자며 잔을 돌렸다. 노인들 넷은 잠시 막걸리만 마셨다.

‘김가야, 어떤 뉴스가 그렇게도 당구를 망쳤어?’ 뉴스를 안 본다는 이씨 노인이 확인하려 들었다. ‘너도 봤잖아? 양심 어쩌고 하는 애 말야!’ 김 노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오죽했으면 종편 방송의 사회자가 급하게 방송 시간에 맞추어 뉴스를 끝내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깜빵 갈 때 죄 없는 성경책 들고 들어가지 않으면 좋겠다며, 다른 기독교 신자들에게 모욕을 주지 말라고 했을까.’ 그러고서 다시 막걸리 양재기를 이씨 노인에게 건네었다.

잠자코 있던 77세의 박 노인이 헛기침을 한 뒤, ‘나는 그런 뉴스 손자 녀석들이 보면 안 될 것 같아, 못 보게 할 꺼다.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그 낭랑한 목소리, 게의 음색은 특색이 있어 좋았는데…. 그때는 그 목소리만 들으려고 눈을 감고 뉴스를 들었는데.’

‘지금은?’ 지금까지 아무 말 없던 송 영감, 다른 직종으로 젊어서부터 영감으로 불리던 당구초보자가 빙그레 웃으며 목소리만큼은 지금도 쓸 만하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남자들이 그 목소리 최면에 걸려 수표를 주면서도 휴지로 보고 주었을 거라고 심각하게 빈정거렸다. 모두들 맞는 말이라고 다시 잔을 부딪쳤다.

‘야, 니들 알다시피 내가 과거 사건들을 많이 아는 편인데, 게, 힘 좀 있는 사람 앞에서는 더욱더 그 목소리로 한 몫을 했어. 처음에는 사양하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다가 못 이기는 척하며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순발력 있게 장악력을 발휘했어.’ 박 노인이 침을 튀겼다.

‘그래? 지금 칠십 하나인데 한창 때는 연애 좀 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이 노인이 거들었다. ‘몰랐었구나. 게, 대학 때부터 연애박사였어. 거, 있잖아. 그 때는 예배당에 가는 애들, 연애하러 간다고 했잖아.’ ‘그래. 그런 경력이 있어 세월호 때, 술 처먹고 지랄 떤 애를 빌어먹을 놈들 패거리로 추천했잖아.’

‘게, 성경책이나 제대로 읽었는지 몰라. 우리 집사람, 한창 때는 성경을 세 번이나 대학노트에 베꼈어. 고시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고시에 합격했을 거야.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송영감, 합격하기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토굴에서 독학하여 합격한 사람, 유명고등학교, 유명대학을 나와 훌륭한 조상을 두고 역시 고시에 합격한 사람,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녀야할 만큼 가난을 딛고 역시 고시에 합격한 사람, 이들 모두는 법에 밝은 변호사들인데, 두 사람을 옆에 두고 양심을 떠들어? 걸음걸이까지 아베를 닮았더구만.’ 김 노인이 핏대를 올렸다.

‘사실, 국민교육적 차원에서 9억에서 1억은 전세금이니까 빼고, 나머지 8억은 어디에 썼는지 밝혀내야 하지 않아? 지가 뭔데?’ 뉴스도 보지 않는 이 노인이 마무리를 했다.

네 노인들은 내기를 걸었다. 구치소에 수감될 때 성경책을 들고 들어갈지 그냥 들어갈지.

<박해룡 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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