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친구 임환철을 만나다
제40화 친구 임환철을 만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8.2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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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사연 주고받으며 밤을 꼬박 새워
자전거에 태워 먼 길을 달려 문산역 도착

‘잠시 숨을 고른 후,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다행이 친구는 집에 있었고, 놀란 표정으로 내 차림새를 살펴보다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엉클어진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낡고 더러운 옷차림과 금방이라도 발가락이 뚫고 나올 것 같이 닳고, 얇아진 농구화에서는 조금만 머리를 숙여도 쾌쾌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부끄러워 붉어진 얼굴을 본 친구는 또다시 시원한 웃음을 웃었다. 오랜만에 목욕을 하고, 친구의 옷까지 빌려 입은 후에야 비로소 예전의 내 모습을 찾았다. 곧 저녁상이 차려지고 며칠을 굶은 나는 정신없이 주린 배를 채웠다.

저녁까지 든든하게 먹은 후 소박한 술상을 앞에 두고 마주앉은 나와 임환철군은 그간 있었던 서로의 사연을 주고받으며 밤을 꼬박 새웠다. 특히 나의 귀로에 관심을 갖고 내 계획을 들어주던 친구에게 반갑기도 하고 놀라운 정보를 들었다. 문산역과 서울역을 오가는 열차가 아직 운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서울까지 걸어서 갈 뻔 했는데 문산역에서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나도 모르게 임환철군을 부둥켜안았다.

날이 밝자마자 문산역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며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는 나에게 친구가 문산역까지 길잡이를 자청하며 낡은 자전거의 뒷자리에 나를 태우고 먼 길을 달려 문산역에 도착했다. 먼 길을 달려 나를 문산역까지 데려다준 그는 언제쯤 다시 만나게 될지 기약 없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열차가 출발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 역시 쓸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명분 없는 전쟁에 분노가 치밀었다.

기적을 울리며 출발하는 열차 칸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의 얼굴마다 근심이 서려있고 움켜쥔 손아귀에는 저마다 양식보따리들이 들려있었다.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는 포성에 신경이 곤두섰고, 행여나 우리가 탄 열차가 폭격이라도 맞을까봐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켜 하늘을 감시했다.

깜박 잠이 들었던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얕은 잠에서 깨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눈에 익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잠시 후 열차는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다. 그간의 고생이 한꺼번에 떠올라 가슴이 벅차올랐고, 눈시울도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사람들과 뒤섞여 열차에서 내렸다. 서로 먼저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역사 안으로 들어서자 국군 헌병들이 출입구를 지키고 서서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을 일일이 검열하는 모습이 보였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행동이 수상해 보이거나 옷차림이 이상한 사람들 중에서 그냥 육안으로 간첩이나 좌익분자들을 색출하기 위한 헌병들의 검색이었다. 헌병의 눈에는 살기마저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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