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중년가치(중년세대 인문학)
[인문학산책]중년가치(중년세대 인문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0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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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달 전이다. 학생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울산대 직원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청년가치협동조합을 만들어 대학생들이 자기 문제를 스스로 끄집어내고 토론하며 자신들에게 닥친 여러 문제 즉 취업성적, 진로, 이성교제의 어려움 등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돕고 있었다.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학점을 이수하지만 정작 위에 열거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도움이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 문제 해결자로서 성과를 낸 청년가치협동조합은 중고등학생 등 청소년 교육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었다. 한마디로 눈높이를 맞춰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방식이었다.

최근 서울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연구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엘리트들이 갖는 위험성은 대학 강의 때부터 잉태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질문이 없는 강의실’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다녔던 시절도 그러했지만 질문을 하는 학생들은 수업 진도를 방해(?)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기까지 했다. 물론 어떤 학우들은 질문인지, 공부한 것에 대한 자랑인지 모를 첫째, 둘째, 셋째까지 넣어가며 아예 논문주제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교수가 강의를 하면 학생들은 그걸 받아 적고 시험에 대비한다. 교수의 입장에서 시험은 가르친 대로 학생들이 제대로 주입받았는지를 확인하는 중간점검과 같았다. 교수가 말한 대로 잘 옮기면 점수가 좋고 그와 동떨어진 답변(‘한국 민주주의를 앞당기기 위해’처럼 생뚱맞은 답안지)을 내면 점수가 낮았다.

이렇게 양육된 엘리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했다. 이미 만들어진 세상구조에 맞춰 고분고분하게 그 구조와 질서를 유지 관리하는 전문 관리인들이 되는 것이다. 엘리트 세계에서는 그걸 출세, 성공이라 부르며 당연한 자기 삶으로 여긴다.

그만큼 우리 세대의 중년들은 존재감 없이 초라해져 있다. 이런 세상에서도 청년들은 자기끼리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 일은 한 중년 남자가 제안하고 벌인 일이었다.

나도 중년이다 보니 적을 둘만한 모임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려 본다. 시 낭송 모임에 잠시 기웃거렸다. 논리를 떠난 시가 갖는 깊이나 여운이 좋아서였다. 좋은 시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언제나 우화에서 느끼는 것처럼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겨서 좋았고 시는 짧지만 강열했다.

간혹 식물생태를 가르치는 강의를 할 때면 적절한 시를 찾아 들려주는 것이 말을 많이 하기보다 감성에 금세 가 닿았다. 하지만 이런 소박함보다는 회원을 불려 예산 지원에 더 신경 쓰는 모임으로 차차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냥 나와 버렸다. 간혹 행사에서 시 낭송 모습을 보면 시가 갖는 아우라나 신비감에 기대는 모습이 더 크게 보여 아쉬웠다.

‘청년가치’가 있다면 중년가치도 세울 수가 있어야겠는데 쉽게 보이지 않았다. 40대 말 연령대가 가장 나이어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누는 이야기로 보면 젊은이를 끌어들일만한 매력도 없고 꼰대에 가까웠다. 자기 생각의 한계를 부단히 깨는 유연하고 풍부한 생각보다는 주장하고 가르치려 들었다. 젊은이가 들어오지 않는 모임은 생명력이 사라져가는 모임이다.

중년들은 가족에게서도 밀려나고 바깥 모임에서도 다른 세대와 교류도 못하고 일과 바쁨으로 그냥 나이 먹어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중년들도 자기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젊은이들이 부모세대 나이의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젊은이들은 현재 어려움과 혼란을 만든 기성세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중년들은 생계문제로 너무 바빠 눈코 뜰 새 없거나 혹은 자기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하였다. 책을 읽어 인문 소양을 쌓거나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만들기보다는 소비적인 여흥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자치센터 문화교실이나 단체 교육프로그램도 기능 자격증을 따는 중년 여성 프로그램은 많지만 인문 소양을 키우는 교육은 별로 없고 중년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아예 없었다.

퇴직 후 인생이모작을 대비하는 노년층 대상 교육들이 많이 생기고 있지만 중년세대가 하는 역할에 비해 그 가치는 실종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중년층들은 중년가치를 제대로 세울 수 없는 것일까? 점점 밀려오는 꼰대 기질을 벗어나 자기 삶에 대한 본질적 성찰로 창조적으로 깨어나 젊은이, 노년층과도 교류할 수 없을까? 하는 질문에 대답을 조심스레 나누고 싶은 것이다.

중년은 몸으로 보면 가장 중요한 ‘허리’이고 축구로 보면 공격과 수비를 다 연결하는 ‘센터필드’이기에 그 가치는 너무도 소중하다.

<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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