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에 빠지다
문화의 향기에 빠지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7.1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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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러시아 여행기②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고산도시 야일로에서 4시간을 달려 다시 오슬로의 최대 번화가인 카를 요한 거리에 들어섰다. 정제된 유럽의 낭만과 정취가 물씬 풍겨왔다. 거리마다 라일락 향기가 도시를 감싼 듯 짙게 흩날렸다. 그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까이에 왕궁과 국회의사당, 미술관, 대성당 등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먼저 국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많은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당연히 노르웨이 표현주의 작가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절규’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1800년대 후반 그려진 뭉크의 초기작 그림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작품 ‘절규’는 그의 초기작으로 유년시절의 불행했던 가족사와 자신이 겪은 인간 내면의 깊은 고독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극단적이고 격렬한 색의 표현과 작품 속 괴이스런 인물들은 그의 정신적 불안과 공포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저물녘 붉은 석양을 낭만으로만 생각했던 나의 관념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그에게 ‘붉음’이란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이었고 두려움이었다.

저녁 무렵 코펜하겐으로 향하는 크루즈 유람선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몇 번의 크루즈 탑승 끝에 일행은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발틱 해의 진주라 불리는 에스토니아에 도착했다.

동쪽으로 러시아와 접해있는 이 나라는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되기 전 많은 민족의 지배를 받아온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북부에 있는 수도 탈린의 구시가지로 들어갔다.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듯 시가지는 아름다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탈린은 13세기 독일기사단의 십자군 원정대가 성을 세우면서 형성되었다는데 화려한 공공건물과 상인들이 거주하던 건물들이 중세의 영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조금 이른 아침 톰페아 언덕에 도착했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풍경은 수백 년 역사의 흔적이 이슬로 내린 듯 고요했다.

여행의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러시아 북서부에 있는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들어섰다. 레닌그라드라고 불리던 이 도시는 200년간 러시아의 수도였다고 하는데 도시를 끼고 흐르는 네바 강 하구의 101개 섬과 함께 수백 개의 다리로 연결된 계획적으로 건설된 도시라고 한다.

상트는 화려함과 웅장함 그 자체였다. 표트르 대제 이후 자리에 오른 몇몇의 황제와 여제가 남긴 화려한 궁전과 미술품들은 한때는 국민들로부터 국가의 재원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원성과 외면을 받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러시아 관광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모스크바로 향했다. 역시 도시의 중심엔 모스크바 강이 젖줄처럼 흐르고 있었고 멀리 크렘린 궁의 붉은 벽돌이 의뭉스럽게 다가왔다.

겨울궁전이라 불리는 예르미타쥐 미술관으로 향했다. 궁전의 화려함과 함께 수십 개의 방에 걸린 그림들이 눈을 현혹시켰다. 마지막 황제의 영원할 것 같던 영화는 한순간의 꿈처럼 날아갔지만 오랜 세월에도 그 진한 문화의 향기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루벤스와 렘브란트의 그림들이 어두운 궁전의 방을 눈이 부시도록 환히 밝히고 있었다.

모스크바의 넵스키 대로에는 러시아 국가시인이라고 추앙받는 러시아문학의 아버지 푸쉬킨의 동상이 우뚝하게 서 있었다. 낭만주의시대 그의 작품 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시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갈 것이니……

위로처럼 여행에 지친 내 등이 갑자기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이정미 수필가·나래문학 동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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