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예찬
쉼표 예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7.0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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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쯤은/ 신문이 없었으면 한다/ 오늘 하루쯤은/ 텔레비전을 끄려 한다// 먼동이 틀 무렵 새벽 강가로 나가/ 갓 깨어난 강물에 머리를 감고/ 밤새 달려온 풋풋한 바람에/ 낮은 자세로 안겨/ 새들이 다투어 전하는 여명의 비결을/ 귀담아 들어보려 한다// (…) 오늘 하루쯤은 느지막이 집을 나서/ 무릎이 아려 올 때까지/ 버려진 흙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뜨거운 노을에 몸을 흠뻑 달구며/ 느긋하게 돌아오려 한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이면/ 창백한 형광램프와 타협한/ 그윽한 촛불을 밝히려 한다// 그리고 오늘 하루쯤은 물으려 한다/ 나는 날마다 무엇을 잊으며/ 또 무엇을 잃어 가는지를’(자작시 ‘아날로그를 위하여’)

지난 주,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일정상 다소 이른 여름휴가를 만끽(?)했다. 4박 5일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으나 잠시 쉬어갈 수 있다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오랜 가뭄 탓인지 시상(詩想)까지 메마른 날들이 끊이지 않았던 터라 시인에게는 재충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휴가가 시작되던 첫날, 나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휴대전화의 전원부터 꺼버렸다. 현관 앞에 놓인 조간신문도 서재로 가져 온 뒤 잘 접어두었다. TV는 아예 콘센트에서 플러그를 뺀 다음 리모컨은 장롱 깊숙이 넣어 버렸다. 숨 막히는 일상에서 그토록 바라던 ‘쉼표’와의 뜨거운 만남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세상과의 단절(?)이었다.

우리들은 쉼 없이 달리거나 속도를 내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하기 쉽다. 현대인들은 긴장된 삶을 살면서 느슨하고 느리게 사는 여유를 차츰 잊어가고 있다. 급한 마음은 대체로 짧은 생각을 낳게 되고, 그런 생활 패턴으로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사고와 불행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오래 엎드린 새는 반드시 높이 날고, 앞서 핀 꽃은 홀로 먼저 지느니라. 이를 알면 발 헛디딜 근심을 면하고, 조급한 마음을 덜 수 있으리라.’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무작정 급하게 서두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속성속패(速成速敗)라는 말도 있다. 아무렇게나 급하게 이루어진 것은 쉽게 결딴이 난다는 뜻으로 이 역시 신중치 못하고 빨리 이루려고만 하는 어리석음을 빗댄 표현이다.

인생을 좀 더 오래 누리며 자신이 품었던 꿈을 활짝 펼치려면, 잠시 멈춰 서서 쉬어가는 여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멈추어 쉼표를 찍은 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과 너그러운 나무들의 대화가 귓전을 은은히 울릴 것이다. 그렇게 멈추어 쉼표를 찍은 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면 갓 태어난 아기 새의 몸짓과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수줍게 핀 들꽃과 너그럽게 침묵하는 여유의 숲이 반겨 줄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도 얼핏 보일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가 오랜 동안 품고 있었던 푸른 꿈도 보일지 모른다. 이 모든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무작정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오느라 보고 듣지 못한 채 놓쳐 버린 소중한 것들이다.

무작정 달려가다 보면 놓치는 게 많다. 잠시 쉬어 가며 파란 하늘에 드문드문 걸린 조각구름도 감상하고, 흐르는 시냇물에 두 발을 담근 채 잊혀진 옛 노래도 한 곡쯤 기억해 내는 여유가 필요하다.

무얼 망설이는가? 지금 바로 삶의 자동차를 멈추고 진정한 ‘삶의 쉼표’ 하나를 느긋하게 찍어 보시기 바란다. 아마 인생은, 쉬어 가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싱그러움으로 반갑게 다가올 것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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