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기 범죄’의 진화
'치기 범죄’의 진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7.0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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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기’란 접미어는 붙임성이 있어서인지 그 쓰임새가 매우 다양하다. 앞에 구슬이 오면 구슬치기, 자가 오면 자치기, 팽이가 오면 팽이치기, 떡이 오면 떡치기가 된다. 때론 병영서낭치기처럼 민속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고약한 뜻의 낱말로 둔갑하기도 한다.

‘날쌘 좀도둑’을 일컫는 날치기, 들치기, 소매치기 따위가 바로 그런 본보기들이다. 여기에 무리, 패거리를 뜻하는 ‘-배(輩)’자 앞에 붙어서 접두어 흉내라도 내는 날이면 경찰의 추격 대상이 되는 ‘날치기꾼’ 즉 ‘전문털이범’의 뜻을 지닌 ‘치기배’가 되고 만다. 이 치기배가 지갑을 날치기하는 ‘소매치기’라면 영어로는 ‘a pickpocket’ 또는 ‘a purse snatcher’라고 표현을 쓴다. ‘나는 역에서 지갑을 날치기 당했다’는 말이 영어로는 ‘I had my purse snatched away at the station’이 된다.

여기서 잠깐. ‘남의 물건을 날쌔게 가로채는 짓. 또는 그런 도둑’을 뜻하는 ‘날치기’가 삼권분립의 보호막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조바심 하나 대단한 대한민국 국회로 옮겨 가면 사뭇 사정이 달라진다. ‘날치기 법안통과’ ‘날치기 국회’ 라는 오묘한 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날치기’의 어원은? 국어사전엔 어원고(語源考)가 안 보인다. 하지만 ‘날쌔다(迅)’와 ‘치다(打)’란 두 가지 본딧말에다 명사형 접미사 ‘-기’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한다.

새내기말(新造語) 만들기가 언론 쪽이 먼저인지 경찰 쪽이 먼저인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다만 조직폭력단 이름만큼은 경찰 쪽에서 먼저 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잽싸게 빼앗거나 강제로 빼앗다’는 뜻을 지닌 ‘-치기’를 뒤받쳐주는 타격 기술이나 서술상의 묘사가 시대상, 사회상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리랑치기’, ‘퍽치기’에다 ‘부축빼기’란 말까지 꼬리를 물고 등장한 것만 보아도 쉬 짐작이 간다.

2009년도 식으로 풀이하자면 ‘아리랑치기’는 ‘술집 주변에 숨어 있다가 술에 취한 사람을 부축하는 척하면서 끌고 가서 지갑을 터는 짓’이다. 뒤에서 둔기 같은 것으로 먼저 친 뒤에 지갑을 턴다는 친절한 풀이도 없지 않다.

경찰에서 말하는 ‘퍽치기’는 학생 시절, 책 위에 동전을 놓고 넘기는 놀이 ‘퍽치기’(혹은 뻑치기)와 소리는 같아도 뜻은 다르다. 둔기로 칠 때 나는 ‘퍽’이란 의성어와 접미어 ‘-치기’의 합성어로서 ‘취객을 상대로 한 강도짓’으로 풀면 된다.

‘부축빼기’도 취객과 관련이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에 출입하는 연합뉴스 C기자는 4일자 기사에서 ‘취객을 부축하는 척하며 금품을 훔치는 행위’로 정의했다. ‘부축빼기 주의보’도 발령했다. “여름철 취객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부축빼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면서 구체적인 사례도 나열했다. “지난 1일 오전 3시 10분께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한 거리에서 A(49)씨가 벤치에 누워 잠을 자던 취객의 바지 주머니에서 9만원을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16일 오후 2시 50분에는 안산시 단원구 한 아파트 출입구에서 B(23)씨가 술에 취해 자고 있던 취객의 스마트폰 등 16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경기지방경찰청이 집계한 범죄 통계는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도 남는다. 2012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3년간 발생한 부축빼기 범죄가 1천53건이나 되고, 계절별로는 여름철인 6∼8월에 집중(460건, 44%)되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애주가들은, 처자식 생각해서라도, 올여름부터라도 음주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치기 범죄’가 날로 지능화해 가는 마당에 방심은 금물 아니겠는가. 경찰 관계자의 조언을 바짝 귀 기울여 듣기를 권한다. “여름철엔 과음을 삼가고, 과음했더라도 공공장소에서 잠자는 것만은 피해야 합니다.”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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