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를 아십니까
‘장진호 전투’를 아십니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6.1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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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필자의 관심을 끄는 뉴스가 하나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이어 세계 2대 동계(冬季) 전투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 건립 사업이 미국 현지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6·25 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전우들이란 모임의 ‘초진 퓨(Chosin Few)’ 노병들이 미국 버지니아주(州) 콴티코 미국 해병전쟁기념관에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세우자는 취지로 추진된다고 했다. 하지만 건립비 모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노병들의 소식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애국단체총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국민성금 모금을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소식도 곁들여졌다.

얼마 전 흥행몰이에 성공한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흥남 철수를 가능케 했던 전투가 바로 장진호 전투다. 함경남도 개마고원 아래 장진호에서 미국 해병 1사단이 중공군의 남하를 극력 저지해, 유엔군 10만 여명과 피란민 9만 8천여명이 흥남 철수를 통해 목숨을 건지는 엄청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미국 해병 1사단은 영하 30~40도의 혹한 속에서도 악전고투하며 7천300여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6·25 전쟁의 전사(戰史) 자료를 살펴보면 전쟁 내내 열심히 싸우지 않았던 부대는 단 하나도 없다. 멋진 승리를 거둔 부대도 있었지만 비참한 패배를 당한 부대도 있었고, 전선에서 치열하게 격전을 치른 전투부대가 있었다면 후방에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묵묵히 투입된 부대도 있었다. 비록 국적과 단대호(團隊號)로 구분되기는 했으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모든 부대들은 땀과 눈물, 그리고 귀중한 피를 흘려가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격정적이었던 1950년, 세계 전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부대가 있었는데, 바로 미 해병 1사단이었다. 한국에 파병된 미군 부대 중 가장 먼저 달려온 부대로, 낙동강 방어전, 인천 상륙작전, 원산 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및 흥남 철수처럼 1950년 한반도 곳곳에서 벌어진 굵직한 전투에 모두 등장, 너무나 인상적인 전과를 남겼다.

장진호 전투는 미 해병 1사단이 1950년 11월 27일부터 17일 동안 중공군 9병단을 맞아 살을 에는 듯한 혹한과 험준한 지형 속에 벌인 가장 참혹했던 전투다. 부상을 당해도, 이를 치료할 모르핀이 얼어버리는 혹한 속에서 동상에 걸려 톱으로 다리를 잘라낸 군인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또 중공군은 자신들 열 명이 죽어도 미 해병 한 명만 죽이면 된다는 식이었으므로 미군들은, 죽여도 끊임없이 몰려오는 중공군 자체가 경악의 대상이었다.

당시 아군은 북한 임시수도였던 평안북도 강계(江界)를 서둘러 점령하려다 그만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말려든 것이었다. 그러나, 미 해병 1사단은 12만 명 규모의 중공군이 겹겹이 에워싼 죽음의 협곡지대를 유엔 공군의 지원 아래 돌파,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악전고투를 벌이며 후퇴했다. 이 결과, 중공군의 함흥지역 진출이 2주간 지연됐고 국군 1군단과 미 10군단 장병 10만여 명이 전투력을 보존한 가운데 흥남항에서 해상으로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 이는 병사들 개개인이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와해될 뻔한 부대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전투에서 화력, 군사의 수 등도 중요하지만 병사들의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이 전투는 미군 전사(戰史)에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 가운데 하나로 기록돼 있다. 당시 뉴스위크는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후퇴한 작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투는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로 꼽히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끝까지 살아남은 용사들 스스로가 매우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기억하기 싫을 만큼의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결코 잊지 않고 자랑스러워하는 전투. 장진호 전투는 앞으로도 세계 전쟁사에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될 것이다.

<김부조 시인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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