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아저씨
피리 부는 아저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6.1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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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등산길에 나는 여러 명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사람이 지팡이 아주머님과 피리 부는 사나이다.

함월산 맨발 등산로를 지나 십여 분 가다보면 아카시아가 무더기로 자라는 아카시아 동산이 나온다. 이 아카시아 동산 정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어르신 등산팀이다.

아저씨 한 분과 아주머니 세 분이 한 팀이 되어서 매일 새벽 등산을 하시는데 새벽 네 시 십여 분쯤에는 이 아카시아 동산 정산에서 “야호” 합창을 하신다.

내가 지나가면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면 모두들 “반갑습니다.”라고 대답을 해주시는데 그 세 아주머님 중에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아주머님은 꼭 “아저씬교? 반갑습니다.” 하시면서 환한 웃음을 선사하신다.

어쩌다 내가 좀 늦게 산행이 시작되어서 아카시아 동산 정상에서 못 만나고 산행이 끝나는 대로변에서 마주칠 때가 있다. 그때는 멀리서 내려오는 나를 알아보시곤 횡단보도를 건너가시지 않고 한참을 기다리셨다가 가까이 다가간 나를 확인하고 “아저씬교? 산행 잘 다녀가시소.”라고 인사를 하고는 지팡이를 휘저으며 대로변을 건너신다.

그 지팡이 아주머님과 나는 잘 모르는 사이다. 그저 새벽 등산길에 잠시 마주치는 사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아주머님은 아주 잘 아는 사람을 만난 듯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인사를 해주시고 혼자 다시 깊고 어두운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나를 따뜻한 말로 격려를 해주신다. 친한 사람은 아니지만 인정이 많으셔서 따뜻한 마음으로 관심과 배려를 해 주시는 것이다.

얼음판같이 차가운 냉혹한 현실사회에서 관심과 배려만큼 세상을 훈훈하게 하는 윤활유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아저씬교?” 하는 지팡이 아주머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워서 나는 오늘도 함월산 아카시아 동산을 부지런히 올라간다.

아카시아 동산 내리막길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은 ‘피리 부는 사나이’이다. 얼굴은 갸름한 세모꼴에 한 손에는 배드민턴 채를 꼬나들고 등산을 하시는 분인데 나만 보면 “벌써 갔다 오능교?” 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나는 이 사나이만 만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십오 년 전쯤 아저씨는 주위에 수십 마리의 개들을 데리고 다녔다. 산등성이 너머에 아저씨가 나타나도 이쪽 산등성이 마을에 있는 개들이 용케도 아저씨가 오는 낌새를 눈치 채고 집집마다 튀어나와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모습이 정말로 장관이었다.

한참 후에 아저씨와 산 정상에서 마주치게 된다. 그때 아저씨는 한 손에는 배드민턴 채를 꼬나들고 다른 한 손에는 검은 보자기를 들고 나타나는데 아저씨 주위에는 수십 마리의 개들이 올망졸망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온 ‘피리 부는 아저씨’라는 동화 속의 아저씨와 너무나 비슷해 보여서 나는 속으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피리 부는 아저씨’라는 동화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동화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렇다.

득실거리는 쥐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골치를 썩이고 있을 때 고깔모자를 쓰고 피리를 든 어릿광대 아저씨가 동네에 나타나 자기가 동네의 모든 쥐를 다 없애주면 거액의 사례금을 자기에게 줄 수 있느냐고 제의를 한다. 쥐만 없애준다면 흔쾌히 거금을 주겠노라고 마을 사람들이 약속을 하자 피리 부는 아저씨는 조용히 피리를 불기 시작했고 집 속에 숨어 있던 모든 쥐들이 아저씨 곁으로 모이더니 춤을 추며 따라가기 시작했다. 마을의 쥐들을 모두 없애고 사례금을 요구하자 손 하나 까딱 안하고 단순히 피리만 불어서 쥐를 데리고 나간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라서 거액의 사례금을 줄 수 없다며 피리 부는 아저씨를 동네에서 내쫓고 말았다.

아저씨는 쫓겨 나오면서 깊은 실망감을 가슴에 안은 채 조용히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그 피리 소리를 들은 동네 아이들이 하나 둘씩 아저씨를 따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모든 동네 아이들이 귀신에 홀린 듯 아저씨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부모들이 아무리 울고불고 매달리며 말려도 아이들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조용히 피리 부는 아저씨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피리 부는 아저씨와 함께 마을에서 사라지자 동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대성통곡을 했지만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는 동화 이야기다. 약속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되지만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야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이 동화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피리 부는 아저씨가 다가오고 있다. “반갑습니다.” 함월산 자락에서 만난 이 아저씨가 정말 동화 속에 나오는 ‘피리 부는 아저씨’일 수도 있다는 착각 속애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새벽 인사를 건넨다.. <류관희 약사, 전 재울강원도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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