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절벽과 식스포켓
교육절벽과 식스포켓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6.10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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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불안사회’ 등 위기에 봉착한 한국사회에 또 하나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름하여 ‘절벽사회’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한 발만 삐끗하면 여지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요구하는 ‘교육절벽’, 저출산 고령화가 몰고 온 ‘인구절벽’, 현대사회의 노예가 된 미생들의 ‘일자리절벽’ 등이다.

먹고 살기 어려워 아이 낳기를 꺼리는 젊은이들, 대기업의 자영업 진출, 청년 백수 100만명 시대, 한국 사회의 절벽은 잔인하고도 치명적이다. 한국 사회는 일단 빈곤층으로 추락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누구나 갑작스러운 실직, 사고, 질병 등으로 한순간에 절벽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소비 흐름은 2010년에 이미 고점을 쳤으며 2020년까지 계속해서 최고 수준에 머물다가 2020년 이후부터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미국 경제전망 전문가 해리덴트가 한국의 미래사회를 진단한 말이다. 해리덴트는 인구구조를 토대로 각 나라의 경제를 전망함과 동시에 이를 이용해 투자 전략을 세우는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덴트는 나이와 소비의 관계를 파고들며 인구통계학적인 연구를 통해 평균적인 가계에서 소비가 절정에 도달하는 시기가 가장이 40대 중후반이 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평균적으로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시기를 45~49세라고 봤고 한국인은 47세에 소비가 정점에 다다른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이 연령대가 줄어드는 시기에 소비가 둔화하고 경제도 서서히 하강한다는 뜻에서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덴트는 그의 저서 ‘2013-2014 세계 경제의 미래’를 통해 한국에는 인구절벽이 2020년쯤부터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저출산으로 인해 유아·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산업들이 휘청거리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 없어진 존재는 산부인과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분만이 가능한 종합병원·병원·의원·조산원 등 의료기관은 2004년의 49.9%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새 반 토막이 난 셈이다. 의학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세(남 77세, 여 84세)까지 늘어났다. 늘어난 수명만큼 고민의 깊이도 더 깊어졌다.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납골당까지 어느 것 하나 경쟁 아닌 것이 없다. 경제력의 격차는 부의 대물림뿐만 아니라 학벌에까지 직결되고 있다. 희(喜)와 락(樂)보다 로(怒)와 애(哀)가 더 사무치는 세상인 셈이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세 가지 조건’으로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정설이 된 지 오래다.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다. 여기에 아이의 체력과 도우미 아줌마의 사랑이 더해져 ‘5대 조건’으로 확장된 버전도 있고 부모, 친가·외가 조부모를 합쳐 ‘식스포켓’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웃픈(웃기지만 슬픈)’ 이런 얘기들이 통하는 것은 자녀를 키우는 데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 자녀 1인당 대학 졸업까지의 총 양육비는 3억896만4천원으로 이전 조사인 2009년보다 4천692만원이나 급증했다. 시기별로는 0~2세의 영아기 양육비용이 3천63만6천원, 유아기(3~5세)가 3천686만4천원, 초등학교가 7천596만원, 중학교 4천122만원, 고등학교 4천719만6천원, 대학교가 7천708만8천원으로 나타났다. 아이 한 명의 양육을 위해 월평균 118만9천원이 드는 셈이다. 4인 가족 기준 도시근로자 가족의 월평균 소득이 세전 기준 510만2천8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실 수령액(월 430만원 수준)의 27% 이상이 아이 한 명의 양육비로 지출되는 구조다.

결국 고령화 시대를 막기 위해 다자녀 출산을 권장하고 있지만 정작 낳고 난 이후에는 양육 부담으로 잠 못 드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위기에 봉착한 교육절벽과 사교육의 부담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비정상적인 공교육의 정상화가 먼저다.

<신영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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