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 금반지를 팔아치운 죄
백사장 금반지를 팔아치운 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3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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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병 기자 시절 부산의 경찰관서를 출입하다 입력해둔 용어 가운데 ‘점유이탈물횡령죄(占有離脫物橫領罪)’란 게 있었다. 한자 뜻을 한참 음미해도 알듯 모를 듯한 이 법률용어가 ‘순화 대상’이 되지 않고 70년 가까이 살아남은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필시, 해방 직후 일본 법전(法典) 연구에 몰두하던 대한민국 초창기의 법률학자 몇 분이 별 고민 없이 차용해서 쓰기 시작한 왜색 용어이지 싶다.

최근 이 법률용어를 다시 접하게 된 것은 실로 40여 년 만의 일이다. 흥미진진한 것은 이 출처불명의 용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건의 배경이다. 지난달 27일 부산 북부경찰서는 ‘점유이탈물횡령사건’ 하나를 공개했고, 그 개요는 대충 이랬다.

30대 중반의 박 모 씨가 전국 4군데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금속탐지기로 뒤진 끝에 귀금속 19점(500만원어치)을 찾아낸 다음 금은방에 팔아치웠다가 덜미를 잡혔다. 주식투자에 실패한 뒤로 자꾸 본전 생각에 빠져든 것이 화근이었다. 그의 활동시간대는 해수욕 시즌이 지난 작년 9∼12월 심야시간대였고, ‘올빼미 작업’이 불가피했던 것은 낮에는 공장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활동무대는 부산 해운대와 송도, 충남 대천, 전남 가게 해수욕장이었으니 말하자면 ‘전국구 마당발’이었던 셈이다. 탐지대상이 된 금속은 해수욕객이 잃어버린 금반지나 귀걸이 등 이른바 ‘돈 되는’ 물건들이었고, 금속탐지기는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250만원을 주고 산 일종의 생계수단이었다.

철 지난 해수욕장에서 동전이나 금붙이를 찾아내는 일은 40여 년 전에도 있었다. 그때마다 지방신문은 이 화젯거리를 ‘박스(box)기사’로 다루는 것이 일상적 관례였다. 그러기에 백사장에서 금반지를 주워 팔아치우는 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은 전혀 상상 밖의 일로 여겨졌다. 또 그때만 해도 백사장 뒤지는 도구는 값비싼 금속탐지기가 아니라 발바닥이나 ‘체(걸러내는 도구)’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최근 경찰은 박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입건’했다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요, ‘불구속’이란 죄질이 ‘절도죄’보다는 가볍다는 뜻이다. 경찰 관계자의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남들이 잃어버린 물건을 주웠다 해도 함부로 처분하면 형법상 범죄가 되니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파출소나 지구대, 유실물보관센터에 신고해 주십시오.”

백사장이나 길에서 주운 ‘유실물’을 정 갖고 싶다면 6개월까지 참아내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유실물의 소유권은 보관센터 신세를 진 지 6개월이 지날 때까지 직전 소유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점유이탈물횡령죄’는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해지는 재산범죄다. 두산백과는 ‘占有離脫物’ 뜻풀이에서 “점유자의 점유를 떠났으되 아직 누구의 점유에도 속하지 않는 물건”이라고 정의한다. 주웠다고 챙겼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들은 이야기지만, 얼마 전 남구청 근처 ‘365코너’에서 주운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경찰에 신고했던 한 시민은 뒤늦게 나타난 지갑 주인이 ‘현금 분실’을 주장하는 바람에 꼼짝 못하고 누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절도죄’인지 ‘점유이탈물횡령죄’인지는 모르지만….

‘점유이탈물’에는 유실물, 표류물, 매장물이 다 들어간다. 고속버스에서 승객이 빠뜨리고 간 ‘유실물’을 다른 승객이 가져갔다면 그는 점유이탈물횡령죄 적용을 받는다. 타인이 잃어버린 돈을 주워 몰래 가져가는 행위, 슈퍼마켓 주차장의 카트 속 물건을 슬쩍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선량한 시민은 모름지기 타인의 물건이라면 무조건 ‘돌(石) 보듯’ 지나칠 일이다. 법조계는 법률용어 순화 대상에 ‘점유이탈물횡령죄’도 포함시킬 일이다.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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