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주머니의 달’
‘돈주머니의 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0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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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공유(共有)를 즐기는 동물인 것 같다. 혼자만의 비밀, 무덤까지 안고 가는 비밀은 별로 흔치 않다 보니 그런 믿음이 생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리스트’라는 걸 기어이 남겼다.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의장’을 지냈으면서도 신군부(新軍部) 이야기를 끝내 무덤 속에 묻고 만 최규하 전 대통령은 차라리 예외에 속할지 모른다.

‘공유’를 즐기는 분들의 뉴스레터를 하루에도 서너 네댓 건은 받는다. 그 내용은 유익한 건강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유머 모음, 희귀동식물의 사진, 성지(聖地) 순례 소식, 심지어는 요염한 여인의 자태에 이르기까지… 청탁(淸濁)을 안 가리는 경향이 있다. 그 대상은 ‘지인’에 한정되지만…. 여하간 사는 재미를 더해 주는 것이니 그분들의 노고에 새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근자에 어느 밴드에 달력을 곁들여 올린 유별난 메시지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올해 5월이 ‘823년 만에 돌아온 돈주머니의 달’이라는 것. 얘기인즉슨 5월 달력 안에 금요일이 5번, 토요일이 5번, 일요일이 5번 있고 그런 일이 823년(9천876개월) 만에 딱 한번 돌아온다고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5월 1, 8, 15, 22, 29일이 금요일이고 2, 9, 16, 23, 30일이 토요일이고 3, 10, 17, 24, 31일이 일요일이다. 메시지 배달의 주인공은 이런 토를 단다. “이걸 지인들에게 보내면 5일 안에 돈이 들어온다 하니 지금 바로 돈주머니 달력을 보내세요. 행운을 빕니다.”

내친 김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 비슷한 글들이 더러 올라와 있다. 아이 둘을 가진 한 엄마는 ‘중국 풍속’이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며칠 내로 돈이 들어온다니 지인들에게 전해 드리라”고 권유한다.

유사상표(?)의 글은 그뿐만이 아니다. 지나간 2011년 7월도 ‘823년 만에 한 번 오는 돈주머니의 달’이라는 설명도 그 중의 하나다. 호기심에 이끌려 뒤적거려 보니 2011년 7월 역시 2015년 5월과 똑같이 금요일이 다섯 번, 토요일이 다섯 번, 일요일이 다섯 번 들어있다. ‘오봉산’이라는 네티즌은 ‘중국 풍수’라며 “이걸 친구에게 보내면 4일 이내에 돈이 들어온단다”며 그럴싸하게 포장하고는 이런 너스레를 떤다.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ㅎㅎㅎ”

또 다른 네티즌은 5개의 일요일과 5개의 월요일, 5개의 화요일이 들어있는 지난 3월의 달력을 가리키며 ‘사랑과 돈주머니의 달’이라는 주석을 단다. 즉 “일월(日月)은 태양과 달, 음양(陰陽)이 교합하는 부부 합궁(合宮)의 달이다. 그리고 5개의 화(火)요일 덕분에 재물이 불같이 일어난다고 해서 5개 일-월-화요일을 ‘사랑과 돈 주머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장난도 친다. “이 글을 보낸 사람한테는 5월 안에 사랑이나 돈의 징조가 보이거나 양력 8월 20일(음력 칠월칠석)까지는 (사랑이나 돈이) 여문다고 한다. 하지만 돈과 사랑이 들어온다고 하니 다들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보시라.”

옛날에는 협박조의 메시지를 이따금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러이런 글을 가까운 사람 OO명에게 언제까지 안 보내면 화가 닥칠 것”이라는 식의 편지글 말이다.

그러나 ‘사랑과 돈’을 소재로 삼은 메시지는 ‘일방적인 협박’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행운의 공유’를 기원하는 것이니 오히려 애교스럽다고나 할까.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하도 각박한 마당에 잠시 웃을 여유라도 가져다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믿거나 말거나 간에.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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