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춤·빛’(흑백 깃의 사랑이여) 공연을 마치고
‘내·춤·빛’(흑백 깃의 사랑이여) 공연을 마치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4.0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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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8시부터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울산시립무용단(예술 감독 김상덕)의 제35회 정기공연 ‘내·춤·빛’(원제: 흑백 깃의 사랑이여!)이 많은 관객들의 아낌없는 박수 속에 막을 내렸다.

공연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무대감독의 준비 멘트가 전달되면 공연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설렘과 긴장감으로 마른 침을 삼킨다. 긴장감으로 이어진 공연이 끝나고 어둠 속 ‘커튼 콜’ 음악이 흐를 때 출연진들은 조금 전의 공연에 대한 저마다의 아쉬움으로 서로를 마주보게 된다.

2013년 시립무용단 제32회 정기공연에 참여했던 필자는 이번 공연도 함께 했다. 사실 올해 초, 동참을 제의받았을 때는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예술 감독은 동참해야 될 이유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며 필자를 설득했다.

공연 주제였던 ‘내·춤·빛’의 원래 제목은 ‘흑백 깃의 사랑이여!’였다. 이 제목은 2013년 울산시립무용단 제32회 정기공연을 준비할 때 필자가 마중물 대본을 작성하면서 의견을 낸 ‘태화강 사랑’, ‘흑백 깃의 사랑이여!’, ‘현현 깃의 풍요로움이여!’ 등 세가지 중에서 고른 것이다. 이런 인연을 내세워 동참을 설득하기에 승낙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보다 지역 무용인과 함께하고 싶은 예술감독의 정서가 더 깊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흑백 깃의 사랑이여!’를 창작하게 된 바탕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울산을 찾는 철새들의 생태환경에 있었다. ‘흑 깃’은 겨울철새 떼까마귀를, ‘백 깃’은 여름철새 백로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다. 떼까마귀와 백로는 매년 가을과 봄에 태화강 삼호대숲을 찾는 울산의 진객이다.

이번에 무대에 올린 ‘흑백 깃의 사랑이여!’는 흑과 백의 논리가 서로 대립하는 내용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서로 종(種)이 다르고 울산을 찾아오는 철도 차이가 있는 떼까마귀와 백로가 180일 동안 한시적이나마 삼호대숲에 어울려 사는 ‘공존’의 가치를 표현한 작품이다.

더 나아가 울산이 예로부터 지향해온 어울림 즉 ‘태화(太和)’ 사상을 요즈음 다문화가정과 화목하게 지내고자 하는 ‘융화(融和)’ 사상에 접목시켜 ‘크게 어울리는 태화’란 의미의 그랜드 하모니(grand harmony)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리고 ‘흑백 깃의 사랑이여!’라는 제목은 필자가 10여년 전부터 매일 새벽 삼호대숲을 찾아 이곳에서 무리지어 사는 떼까마귀와 백로를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내놓은 ‘울산 태화강에 도래하는 떼까마귀·백로의 기상에 따른 행동변화’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었다.

시대적 무용예술의 창작은 시의적 독창성을 요구한다. 사실에 의한 시의적 무용 창작은 지역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다. 울산 무용의 독창적이고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한다면 무용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울산의 향토 및 자연생태를 기본적으로 먼저 알아야 된다고 조언하고 싶다.

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울산시립무용단의 ‘흑백 깃의 사랑이여!’라는 독창적인 무용 작품이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연출이 더욱 세분화되고 깊이를 더해 간다. 리허설에서 무용수들이 움직이는 동선에 여유가 엿보였고, 그런 여유는 공연에 임하는 모두의 마음가짐과 행동거지에서도 진하게 느껴졌다. 이번 공연은 무대감독, 조명감독, 음향감독과 참가한 무용인 100여명이 앵매도리(櫻梅桃李)가 되어 이루어졌다. 작은 배역이지만 출연자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예술감독의 의도대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공연을 잘 마쳤다.

김문숙 원로 무용가가 말한 “전통만 좇아선 한국 춤 발전 없어”라는 일침은 무용수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1877년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초연된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있듯이 ‘흑백 깃의 사랑이여!’가 시립무용단의 고정 레퍼토리로서 시대에 맞게 보태고 빼고 다듬고 한다면 더 많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울산은 품격 있는 ‘창조경제 무용도시’로서 전국의 중심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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