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렬의 주막편지] 태화강 회유어에 대한 단상 2
[김종렬의 주막편지] 태화강 회유어에 대한 단상 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3.2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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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맞춰 온 봄비 덕분에 사방이 물소리로 가득하다. 거기에다 날씨마저 포근해 산빛 들빛이 마냥 곱다. 들판이며 양지바른 산비탈 여기 저기 쑥이며 달래 등 봄나물을 캐는 아낙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아니나 다를까 불어난 강물을 거슬러 약속처럼 황어가 돌아왔다.

태화강에는 예부터 다양한 어종과 어패류가 서식했고 무엇보다 회유어가 유명했다. 바로 황어, 은어, 연어인데 그 중 황어가 개체수로나 지역 사람들의 정서상으로 단연 으뜸이다. 황어는 양지쪽에 쑥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보리가 한 뼘 정도 자랄 무렵인 이른 봄에 큰 비가 지나가고 황톳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시기에 맞추어 산란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온다.

유년 시절엔 이맘때가 되면 삼호와 범서 전역 강가에는 여기 저기 늘어선 흰 천막 사이로 황어 잡는 사람들과 구경꾼, 장사꾼,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현재는 생태보존을 이유로 포획을 금지하고 있지만, 당시의 천렵은 삶의 애환을 달래는 활력소인 동시에 연례행사였다. 당시 각 마을마다 ‘황어계’라는 게 있었는데 평소에 일정량의 보리쌀을 갹출해 모아두었다가 이를 환전해 황어철이 되면 나들이 삼아 하루를 즐기곤 했다.

황어는 주로 투망과 작살로 잡았는데, 투망은 ‘좽이’라고 하는데 원뿔 모양의 그물을 펴서 잡는 보편적인 방법이다. 작살은 주로 야간에 이루어졌는데, 횃불을 들고 강가를 비추어 황어 떼가 모여드는 틈을 타 찍어 잡는 방법이다.

황어는 요리 방법도 다양하다. 황어골회, 황어쑥국, 황어탕, 황어포 등이 있다. 회는 흔히 일반 생선회 먹는 방법과 같고, 골회는 살을 뜨고 난 후의 머리와 뼈를 잘게 다져 초장에 비벼 먹거나, 미나리, 무채, 쪽파 등과 무쳐 먹는다. 쑥국은 황어를 먼저 끓인 후 다시 어린 쑥을 넣어 살짝 김만 낸 뒤 양념을 넣어 먹는다. 어탕은 살을 제외한 뼈와 내장을 함께 넣어 끓이며, 포는 내장을 빼내고 씻은 다음 배를 갈라 소금을 친 후 말렸다가 석쇠에 구워 먹는다.

또 다른 회유어로는 은어와 연어가 있는데, 은어는 6월을 전후해서 치어가 올라와 가을까지 자란다. 은어는 매끈하고 날렵하며 은빛을 띤다. 특히 비린내가 없고 몸에서 수박향이 나는 고급 어종이다. 잡는 방법으로는 역시 투망이 가장 보편적이며 낚시, 끌낚시, 오리목 등이 있다. 오리목은 요즘은 볼 수 없는 재래방식인데 술 거르는 체 바퀴를 초승달 모양으로 잘라 한 자 정도의 간격으로 줄에 매달고, 미리 쳐 놓은 가두리 그물 쪽으로 조이면 물속의 쳇바퀴 움직이는 모양이 마치 오리가 헤엄치는 발로 착각한 은어가 반대쪽으로 모여든다. 요리방법으로는 회, 구이, 튀김, 조림, 은어밥, 은어죽, 은어미역국 등 매우 다양하다.

연어는 우리나라 동해안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회유어로, 태화강 연어는 대개 10월을 전후해서 울산만에서 삼호를 거쳐 선바위 일대까지 올라온다. 원래 그 숫자가 풍부했으나 사연댐과 대안댐이 축조돼 유입 수량이 현저하게 줄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부터 서서히 개체수가 적어지면서 1980년대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수질 오염 등 여러 환경 요인이 더해 간간이 몇 마리씩 보이며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수질 개선 사업과 치어 방류 사업을 지속적으로 한 탓에 지금은 수백 마리가 목격되는 등 옛 태화강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고, 올해는 처음으로 지천인 척과천 하류에도 연어가 올라 산란하는 이색풍경이 목격되어 반가움이 더했다.

태화강은 백운산 탑골과 가지산 쌀바위를 빠져나온 물이 언양에서 만나 태화강 중류인 선바위와 굴화들을 돌아 삼호를 거쳐 도심을 지나 연안으로 흘러가는 일백 리가 조금 넘는다. 강물은 온통 금빛이고 속이 훤히 보일만큼 투명하다. 때문에 어딜 가나 크고 작은 물고기들의 유영과 다양한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오염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 고장의 1980년대에 비하면 기적과도 같다. 그동안 행정당국의 지속적인 노력과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 덕분으로 마치 1960년대의 태화강을 보는 듯하다. 당시는 중류인 범서읍 일대까지 재첩이 흔했고 종종 가오리가 목격되기도 했다.

태화강은 회유어의 안식처이다. 회유어는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며 가족이다. 태화강은 일찍이 그들이 주인이었다. 우리는 다만 그들로부터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지금쯤 태화강을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을 은어에게 감사하며, 수억만 리 먼 바다를 돌아 이 작은 한반도 땅하고도 울산 땅 좁은 하구를 향해 온몸으로 파도와 싸우고 있을 태화강 연어에게 박수를 보낸다. 끝으로 회유어의 특성에 맞는 시민축제의 장이 마련됐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특히 황어는 해마다 개체수가 급속히 불어나 수만 마리에 이르는 만큼 충분한 경제적 가치와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본다.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다.

김종렬 시인 / ‘물시불 주막’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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