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조형물을 보며 28 그리스수학보다 신라수학의 첨성대 ①
신라조형물을 보며 28 그리스수학보다 신라수학의 첨성대 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8.1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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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관광에서 깊게 인상되는 것이 전통골기와한옥이다. TV역사드라마에 단골영상으로 나오는 대감한옥보다 더 큰 99칸의 한옥이 여기저기서 위용을 보인다. 그런 품격한옥의 대부분이 황남동에 산재했었고, 아직도 한옥의 대표지역은 경주(慶州)이다. 전주(全州)는 소규모 평기와한옥이며, 한양(漢陽) 운종가 -종로양편 뒷길에 늘어선 골기와한옥은 점포겸용이어서 경주의 대(大)한옥과는 비교가 못된다. 필자는 아직도 남(南)경주 황남동의 30평 소(小)한옥에서 생활한다.

이 황남, 황오동 이남지역에 신라유적의 대부분 산재하는데, 가까운 순부터 첨성대, 계림, 반월성과 그리고 남천건너의 노천박물관인 남산(南山)이 울주군 반구대를 거쳐 문수산 까지 이어진다.

서울태생의 필자는 6. 25피난지 경주 황남동에서 소년기를 지냈다. 황남초등 6학년 여름방학 후 울산초등학교로 전학, 졸업했다. 돼지 코 별명모표의 울산제일중학교에 입학, 울산고교 2학년 초에 명문 경주고교로 전학 했으나, 통산 130여일의 결석학생이기에 간신히 졸업은 했다.

서울미대에 입학하고, 군복무를 합쳐 8년 만에 졸업했다. 그런데 장래결정의 가장 중요한 중, 고등학생 청소년시기에 불량학생조직생활로 인해서 나의 모든 장점을 낭비해 버렸지만, 그 후회의 추억도 기회가 되면 반추서술 할 생각이다.

경주고 미술부장으로서 오전수업 후. 그림연습의 집합장소인 계림으로 향하곤 했다. 그 일대의 많은 추억들 중에 지울 수 없는 기억은 관광전문가이드가 없던 시절에 택시기사의 가이드 내용이다

신라 때는 반월성의 석빙고-조선시대 얼음저장소-에서 불(火)을 떼면 안압지의 물(水)이 끓고, 연기(煙)는 첨성대굴뚝으로 나왔다는 해설(?)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관광객의 모습이 선하다.

경주고교 미술교사로 출퇴근길로 첨성대의 뒷 도로를 이용하곤 했다. 학교재단의 배려로 10평의 연구실에서 야간작업은 다반사이고, 그렇게 33여년을 보내고 퇴임했다.

전국어느 곳보다도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한 경주의 2004년 봄날, 밤 10시경에 일찍 야간작업을 마치고, 시내의 술집을 피해서 곧바로 귀가 했다. 도중에 번쩍 어-필된 것은 반월성, 계림과 첨성대 일대의 전개파노라마, 즉 경주의 남부공원일대가 조명에 의하여 극적으로 연출된 야경이었다. 신비, 환상적 형태들이 시선이동에 따라 기괴한 모양들로 연출되는 이 야경에 탄성을 발하지 않으면 너무 일상에 찌든 탓이라고나 할까.

입체구조물인 첨성대가 조명 탓으로 평면실루엣으로 보였다. 그러한 기하곡선의 윤곽형태는 이상완전 의 조형미 그 자체이어서 이구동성의 감탄사를 발할 수밖에 없다. 주간의 첨성대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표상이다,

그 선(線)의 미(美)가 바로 신라 미의 특질이다. 석굴암본존상, 고분, 성덕대왕신종 등, 그 윤곽선들이 완만하지만 느슨하지가 않으며, 자질구레한 설명이 생략된 기하곡선의 형태미이지만 군계일학의 독선이 아니고, 비정의 날카로움이 없는 포함의 넉넉함을 지닌다.

더욱이 여유로운 신라의 조형미는 기하미의 현대성까지 포함하므로. 근래유행으로 어디에서나 보게 되고 식상하기 조차한 일반적인 조각공원의 조형미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경주에는 일반조각공원의 불필요성을 지면으로 강조하였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반조각공원은 없다. <계속>

/ 이동호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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