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화융성 DNA’ 보유자
“놀러가서 배우는 ‘편안한 박물관’으로 생각해줬으면 ”
다양한 ‘문화융성 DNA’ 보유자
“놀러가서 배우는 ‘편안한 박물관’으로 생각해줬으면 ”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5.03.03 2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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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섭 울산박물관장… “울산 근현대사의 흔적들 빨리 지워지는 것 안타까워”
▲ 울산박물관 신광섭관장.

지난해 11월 17일 부임했으니 지난달 24일이 꼭 100일 되는 날이다. 신광섭 신임 울산박물관장(64·중앙대 겸임교수). 설 연휴가 끝난 며칠 후 그의 집무실을 찾았다.

‘정주영 탄생 10주년 특별전’ 추진

첫 질문은 ‘박물관을 어떤 개념으로 접근해야 좋을지’였다. “서구에선 ‘Museum’이 ‘박물관+미술관’ 개념이지만 우린 ‘박물관’을 너무 엄숙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놀러가서 보고 배우고 돌아가는, 그저 편안한 곳쯤으로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죠” 서구의 Museum은 ‘박미법(博美法)’ 적용을 받는다고도 했다.

무척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융성 DNA의 보유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울산이 그 DNA의 이식 무대로서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한 DNA가 실제로 싹을 틔우고 있는 사례의 하나가 11월 개최를 목표로 추진 중인 ‘아산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사진전)’이다. 국립박물관이라면 특정 인물에 대한 전시를 기피하는 전통이 강하지만 그 동네 출신 신 관장의 생각은 달랐다.

‘아산(娥山)’이라면 산업도시 울산을 일으키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주춧돌을 놓은 주인공이다. “울산의 주력산업들이 휘청거리는 이 시점에 아산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분의 창업정신을 되새기는 일,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요?”

주위에서 말리기도 했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특별전을 전제로 한 협의는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도 ‘긍정적 검토’를 약속했다.

경주 다문화박물관도 申관장 작품

알고 보면 국립민속박물관의 존재는 그의 돋보이는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공사가 한창인 경주의 ‘국제다문화박물관’ 건립사업 역시 그의 산파역 덕분이다.

그러나 울산의 토양은 아직 개성 있는 그의 DNA를 제대로 수용하기에 모자란 구석이 있다.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명맥이 살아남은 ‘울산의 옹기문화’를 지구촌에도 널리 알릴 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 보자는 그의 제의는 입 밖에 나오자말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안타깝긴 해도 바로 이것이 울산 문화의 현주소이자 지역 여론주도층의 문화 마인드인 것을 그인들 어찌하겠는가.

울산박물관에 대한 첫인상이 궁금했다. “선사에서 현대까지 죄다 끌어안다 보면 특징이 사라질 수도 있죠. 또 산업도시란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고요.”

사실 울산박물관의 산업관은 기업체들의 협조를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해서일까, 누가 보아도 꾸미다가 그만둔 느낌이다. 신광섭 관장 그에게는 이 허전한 공간을 내실 있게 채워 넣어야 하는 책무가 한 가지 더 주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엉뚱할 수도 있는 제안을 하나 건넸다. “국립민속박물관 산파역 경험을 살려 가능하다면 울산박물관 울타리 안에, 알차고 멋진 민속박물관 하나 지어 울산시민들에게 선사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 그의 여린 어깨가 이 무거운 짐까지 능히 감당해낼 수 있을까, 저어하면서…. 하지만 그는 긍정의 고갯짓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울산 근·현대 유물 사라져 아쉬움”

이야기는 다시 ‘근대사’와 ‘현대사’의 구분 시점으로 돌아갔다. “근대사의 시발점은 1876년의 제물포조약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문제는 현대사 부분의 대한민국 건국 시기이죠. 정통성 있는 대한민국 정부를 1919년에 수립된 상해임시정부로 보는 시각, 그리고 1948년에 수립된 이승만정부로 보는 시각, 이 두 가지 시각이 대립하고 있는 거죠.”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울산의 근·현대사적 유물에도 그는 애정을 표시했다. 땅만 팠다 하면 쏟아져 나오는 매장문화재와는 전혀 딴판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근·현대사의 흔적들이 너무 빨리 지워져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이른바 ‘적산가옥(敵産家屋)’으로 일본인관광특수의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포항이나 군산 쪽 이야기도 대화의 한 자락을 장식했다.

얼마 전 울산시의회 변식룡 의원과 울산시 국제협력과 관계자가 일본 구마모토 시립박물관을 둘러보고 온 그 뒷얘기에도 그는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냈다. 구마모토 쪽의 의사와 마찬가지로 양대 도시 박물관 교류가 꼭 성사되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 신광섭 관장이 지난 1월 13일 ‘별 보고 출근하고 달 보고 퇴근하고’ 전시 때 협조를 아끼지 않은 이상달씨에게 감사패를 건네고 있다.

옹기엑스포 때 대형옹기 제작도 제안

그는 울산과 전혀 무관한 인물이 아니다. 그가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으로 재임하고 박맹우 국회의원이 울산시장으로 재임하던 무렵 그는 ‘70년 만의 귀환’이란 이름으로 달리(현 남구 달동)에 관한 전시회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울산옹기문화엑스포를 준비하던 시기에는 대형 옹기 제작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불에 타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한 분이 있었죠.” 그는 지금이라도 과거 역사의 편린을 기록으로 남기기를 희망했다. 따지고 보면 박물관도 그런 소중한 기록물들을 보관하는 곳간이 아닌가.

그토록 의미 있는 울산의 곳간을 풍요롭게 채우는 일, 그것은 그의 할일인 동시에 울산시민 모두의 책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는 이런 말을 전했다. “울산시민들의 기증문화는 다른 도시 사람들보다 훨씬 앞서 간다고 생각해요. 우리 박물관에서 소장한 유물 4만 여 점 가운데 1만 점 넘는 유물이 시민들께서 손수 기증해주신 것들이죠.”

신 관장은 ‘박물관의 4대 요소’에 대한 설명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감했다. 즉 컬렉션(유물)과 항구적 건물, 큐레이터, 그리고 프로그램(돈)이 그러한 요소들이라는 것.

박물관장 두루 거치고 홍조근정훈장까지

충남 부여 출신. 서울 보성고를 거쳐 중앙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사를 전공한 그는 2006년 6월 모교인 중앙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경력은 문화융성 DNA에 못지않게 화려하다. 그러나 2급 상당 고위직의 ‘계급’을 한껏 낮춰 ‘인생 2모작’ 도전장을 울산에서 던졌다.

주요경력 11가지에 기타 경력이 32가지나 될 정도로 그의 ‘스펙’에는 깊이가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관장,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 및 역사부장, 국립민속박물관 관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추진단장, 백제고도문화재단 정림사지 복원고증연구단장을 역임했다.

상훈 경력으로 대통령표창(2006, 국립중앙박물관 이전개관 공로), 으뜸박물관인 상(2007, 충청남도 박물관협회),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2010,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 홍조근정훈장(2012) 수상이 있다.

부인과의 사이에 장성한 2남을 두고 있다. 변호사로 활약 중인 장남은 법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고, 대학원을 나온 차남은 환경관련 업체에 근무 중이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 /사진제공= 울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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