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빛나는 아침 -놋수저-
시가 빛나는 아침 -놋수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04 1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정진규/그림=우형순
 
     
 
▲ 우형순 作, ‘파랗게 피어 있는 기억’.

 

어머니가 쓰시던 놋수저 한 벌을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의 고봉밥에 오늘도 놋수저를 꽂는다
제삿날 메올리는 삽시(揷匙)가 아니다
어머니의 고봉밥을 어머니의 놋수저로 내가 먹는다
혼령의 밥을 내가 먹는다
어머니는 오늘도 내 밥이시다
죽이 아니라 밥이시다
어머니 가신 뒤 늘 배가 고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고봉밥에 놋수저를 꽂았다

- 정진규 시집 <本色>(천년의시작, 2004년)

어머니의 살과 피를 녹인 모유를 나는 다른 애들보다 오래 먹었다. 그래서 익모초 찧은 즙인가를 유두에 발라 겨우 뗐지만 진종일 울어서 갓 동생을 보신 어머니를 많이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래 그런지 내가 큰애를 보자 강보에 싸안고는 괴로운 지병에도 종일을 웃으시며 어루던 모습이 수시로 떠오르곤 한다. 우리 집에는 은수저 두 벌이 있다. 한 벌은 생전에 아버지가 쓰셨지만 나머지 하나는 어머니 제삿날에만 사용했는데, 언제부턴지 아내는 내 자리에 놓는다. 평생을 고단하게 사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마련했건만 결국 내 차지다. 지금은 그토록 애터지게 지은 교동 옛집도 북부순환도로에 들어 흔적이 없다. 시를 보면, 화자는 어머니의 ‘제삿날 메올리’듯이 지은 ‘고봉밥’을 ‘어머니의 놋수저’로 떠먹고 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오늘도 내 밥이시다’라고 새삼 다짐하듯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림이 내게는 목이 멘 울먹거림으로 번져왔다. 이처럼 우리들 부모세대는 자신의 등골마저 뽑아 기꺼이 자식들에게 밥으로 먹였다. 요즘 아내는 몸이 부실한 나에게 그런 밥을 백 번도 더 씹어야 한다는데, 그 밥을 씹으면 씹을수록 내 눈에는 자꾸만 이슬보다 시린 별이 맺힌다.

-안성길 시인·문학박사

정진규(鄭鎭圭)

▲ 정진규 시인.

ㆍ1939년 경기도 안성 출생

ㆍ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ㆍ시집 - 한국대표명시선100 ‘밥을 멕이다’

한국현대시인총서 ‘정진규 시 읽기 본색(本色)’

정진규의 짧은 시화 ‘향깃한 차가움’ 등

- 시가 빛나는 아침
기획= 도서출판 푸른고래·갤러리201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