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양들의 침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1.0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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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을미년(乙未年)은 12간지(干支)의 8번째 미(未)에 해당되는 양띠해이다. 동양에서는 양을 온순하고 평화적인 동물로 간주한다. 특히 양들은 떼를 지어 단체생활을 하지만 서로 다투는 일이 없어 화합을 통해 공생하는 동물로 상징된다.

서구는 고대부터 양을 신성하게 여겼다. 희랍 신화에 인간이 제우스신에게 기원할 때 양을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구약 성서에도 카인과 아벨이 하느님께 양을 제물로 바쳤다는 구절이 나온다. 예수가 양 떼와 함께 서 있는 성화도 봤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양은 동서고금을 통해 사랑받았고 신성시되던 동물이다.

중국 춘추시대 고전인 시경(詩經)에 ‘누가 네게 양이 없다 하느냐. 300마리의 양이 저 풀밭에 있거늘’이란 말이 있다. 해석하기가 좀 애매한 말이긴 하지만 분명 고전다운 뜻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양의 존재 가치는 대단하다. “저 사람은 순한 양이야”이란 말은 사람의 됨됨이가 착하고 선함을 나타내는 대표적 의인(擬人)화 표현이다.

양이 순하다는 것은 착한 것이고 착하다는 것은 깨끗함이요, 깨끗함은 순결함을 뜻한다. 또 순결은 진실이고 진실은 정직이며 정직은 덕성(德性)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덕성은 베푸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 양들은 인간에게 새하얀 털과 신선한 젖을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고기를, 그리고 거룩한 신단(神壇)에 피와 육신을 바친다. 이렇게 생(生)의 찬사를 듣고 사(死)의 베풂을 해내면서도 양들은 침묵한다.

앞서 언급한 시경의 문구는 이처럼 인간에게 양의 본성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없다면 300마리 중에서 한 마리라도 찾아서 그 착한 양의 본성(양심)을 배우라는 고전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 게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 순하고 착한 본성을 깨우치라는 경고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한다. 때문에 말은 인간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하지만 침묵이 더 가치가 있을 때도 많다. 그래서 ‘말은 화(禍)를 불러일으키지만 침묵은 화를 면하게 하거나 감소시키는 힘을 갖는다’고 한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침묵을 통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침묵은 무한한 생명력을 축적하는 시간이다”라고 침묵의 가치를 설파했다. 그러나 이 침묵은 유효한 말까지 ‘침묵을 시키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말을 삼가는 것, 말을 간결하게 하는 것, 말을 할 때 착하고 부드럽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이 많아 비난받는 사람은 있어도 침묵해서 비난받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말을 안 하는 소극적 태도보다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침묵하는 것이 필요하다. 침묵을 두고 진정한 지혜에서 나오는 최선의 대답이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다. 요즘 우리 주위엔 ‘모난 돌’들이 많다. 침묵보다 ‘어설픈 웅변’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그 중 하나다. 새해에도 날카롭게 모난 돌들이 정을 겁내지 않고 이 사회에서 소리를 높이는 것을 잠재우려면 양들이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양의 보드라운 흰털처럼 깨끗하게 그리고 덕성을 베푸는 따뜻하고, 순하고 착한 모습으로 밝음의 사회를 이룩해야겠지만 ‘모난 돌’을 반듯하게 깎으려면 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양들이 반드시 깨어나야 한다.

이영조 중구보훈안보단체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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