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챔피언 홍수환 선수 강연후기
세계 챔피언 홍수환 선수 강연후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2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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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6일 북구청이 주최한 ‘열린 아카데미’에서 전 슈퍼 밴텀급 세계 챔피언 홍수환 선수를 만났다. 현란한 스텝을 밟으며 잽과 스트레이트로 주먹을 날리듯 그의 강연은 청중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지식과 체험, 노련미를 선보였다. 마침 이 날은 홍수환 선수의 4전 5기의 신화가 기록된 37주년이라 더욱 의미가 컸다.

그는 4남 3녀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친이 49세의 짧은 나이로 돌아가셨다. 마침 그 당시 유명세를 떨치던 김준호 선수가 앞집에 살았기 때문에 그가 권투선수의 길로 들어서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훈련을 죽자고 했다고 한다. 인천 부평에서 십정동까지 철도 침목을 달리고 달렸다. 까마득한 계단을 수십 번, 수백 번을 오르내리며 땀을 흘려 체력을 키우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그렇게 경기마다 승승장구하며 마침내 세계 챔피언이 된 인물이다.

중년의 나이를 넘긴 사람들은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라는 홍 선수와 어머니의 대화를 대부분 기억한다.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15회 판정으로 이기고 세계 챔피언이 되었을 때 홍선수가 엄마와 통화한 내용이다. 가난한 나라의 권투선수로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라 국위를 선양하고, 귀국한 비행기 트랩에서 그는 전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인산인해를 이룬 군중들 속에서 카퍼레이드를 할 때 그는 세상을 다 얻은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일개 병사의 신분으로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세계챔피언이 됐다는 귀국인사를 할 때 그는 태양처럼 찬연한 인생이 펼쳐지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삶은 그가 꿈꾸는 대로 펼쳐지지 않았고 굴곡진 골짜기를 지나며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마다 그는 많은 마음고생을 했다.

챔피언은 이날 강연에서 “어려운 시절, 가난한 때를 잊지 말고 늘 겸손하자”고 했다. 그가 젊은 시절 배고픔을 참으며 운동했을 때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독일 탄광광부로 간호사로 외화벌이를 나섰다고도 했다. 또 달러를 벌기위해 젊은 군인들이 생명을 담보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뼈 아픈 역사가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흥청망청 놀고, 외유를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세계를 다녀보니 성실한 나라, 열심히 일하는 국민성이 이긴다고 강조하며, 지금 우리는 절제와 더 나은 미래를 대비하는 준비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WBA슈퍼밴텀급 초대전에서 그는 카라스키야 선수에게 2회전에 4번이나 다운됐다. 펀치가 얼마나 센지 머리를 관통하는 것처럼 강력했다고 그는 술회했다. 흑백 텔레비전 앞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3회전 공이 울리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방심하는 카라스키야를 KO시키고 그는 승리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한 순간도 방심하지 말고, 끝났다고 할 때 시작하라’고 한다. 수십 년이 지나 파나마에서 카라스키야를 우연히 만난 기회에 그 때 패배한 이유가 궁금해서 카라스키야에게 물었더니 “다 끝난 게임이니 관중들에게 좀 더 볼거리를 제공해라”며 코치가 긴장의 끈을 풀어버린 게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전하더란다.

그는 이날 강연 끝 무렵에 포기하지 않는 근성, 집중의 힘을 강조했다. 이런 것들을 꼭 챙기며 살라고 간절히 당부했다. 선배였던 전 남석우 삼척시장의 권유로 20년째 강연현장을 지켜내고 있는 전 세계챔피언 홍수환 선수는 “누구에게나 한 방은 있기 마련”이라며 그가 깨달은 ‘행복한 강연’을 갈무리했다.

<박정관 굿뉴스 울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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