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조정자의 삶
위대한 조정자의 삶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1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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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은 넬슨 만델라의 서거 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존경받는 어른’이란 뜻의 ‘마디바(Madiba)’로 불렸던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템부 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변호사로서의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백인 정권의 극단적 흑백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맞서 싸웠다. 남아공 최초 흑인 대통령으로서 인종차별 철폐와 흑백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한 그는 1993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인류를 향해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가 무관심과 냉소, 이기심 탓에 휴머니즘이라는 이상 앞에 부끄럽게 살았다는 말이 미래 세대에서 나오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합시다. 인도주의가 더 이상 인종주의와 전쟁이라는, 별이 없는 한밤중에 묶여 있을 수 없다고 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 옳았음을 우리가 증명하도록 노력합시다. 진실한 형제애와 평화가 금과 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값지다고 말한 그가 단순한 몽상가가 아니었음을 우리 모두가 증명하도록 노력합시다.”

1994년 5월 10일, 그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무렵, 과거사 청산에 대한 요구는 매우 높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전체 인구의 16%에 불과한 백인들이 84%의 흑인과 유색인을 지배하기 위해 자행한 살인과 고문, 납치 등 반인권적 범죄 진상을 밝히라는 것이었다. 그 또한 오랫동안 옥살이를 한 피해자였다. 과거 청산의 요구는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원하는 것이었고, 혹은 보복을 바라는 속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해법은 이런 기대와는 달랐다.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설치한 그는 사실에 대한 진상 규명은 철저히 하되, 법적·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사면과 화해를 추구한다는 원칙을 적용했다. 이에 반발이 없지는 않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과 추악한 과거사 규명의 필요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이루려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의 삶은 자유와 평등을 위한 불굴의 투쟁 그 자체였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헌신은 한 세기에 걸친 대하드라마이자 감동적인 인간 승리의 기록이었다. 만델라는 불의한 인종차별의 사슬을 끊었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존엄을 가지고 사는 ‘무지개 나라’를 꿈꾸었다.

특히 가해자 백인들에 대해 화해와 용서를 실천한 관용정신이 빛났다. 이처럼 만델라의 삶에는 일관된 휴머니즘과 민주주의, 그리고 관용주의가 담겨 있었다. 그가 위대한 조정자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만델라가 보여준 조정자로서의 리더십에는 “권한 위임에 능해야 하고,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다. 자신이 이끌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즐비했던 투사들을 잘 아울러 혈기왕성한 무장 세력을 달램과 동시에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백인 정부와의 협상장에 나서 데 클레르크(F. W. de Klerk) 전 대통령을 설득했던 점이 특출한 예로 꼽힌다.

옥살이 27년을 포함, 평생을 흑백 차별 정책에 맞서 싸우며 인간의 가치와 평등한 인권을 주장했던 자유 투사 만델라. 그의 정신은,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양극화의 문제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인들도 꼭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AP통신이 “성경의 말씀과 같다”고 높이 평가했던 그의 말이 오늘따라 더욱 가슴 깊이 와 닿는다.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고,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나는 모든 사람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이상을 간직해 왔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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