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흰 눈이 덮인 금낭화 꽃밭을 바라보면서 내년 봄 누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금낭화 꽃을 감상할까 상상의 나래를 펴는 중이다. 그래, 소꼽 친구였던 영례와 희자를 초청해 커피를 마시면서 함게 어린시절 이야기를 나눠야지! 거기다 이웃집 영수 아재도 함께 하면 더욱 재밌겠는데. 산창 초등학교, 선강정, 노양수, 청원각, 뱀 고개, 백일 벌, 삼원수, 감투 바위. 정말 밤새워 이야기 꽃을 피워도 끝이 없을 것 같다. 짱구 운철이와 명재형은 아마 이야기보다 ‘천궁 술’이 더 잘 어울릴지 모른다. 봄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날이면 운치가 있어 천궁 술맛이 기가 찰 거야! 안주는 천궁 보쌈에 삼채 파전이 제격이겠네.
그저 가슴 속에 품고 살지만 정말 원두막에 초청해 ‘천궁 술’을 한잔 기울이고 싶은 사람들이다. 생천궁을 가을에 수확해 생긴 모습 그대로 담근 술이 ‘천궁 술’이다. 진토닉과 함께 섞어 마시면 맛이 기가 차다. 필자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술이 천궁 술과 오마자 술이다. 천궁 술 이야기가 나오니까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 더 떠 오른다. 세천이 부부다. 꼭 한번 우리 약초원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만 해를 넘기고 말 것 같다. 내년 봄에는 꼭 초청해 금낭화와 저녁노을도 구경시켜주고 ‘천궁 술’도 한잔 권해야겠다.
붉은 홍매화 가지에는 벌써 꽃망울 잔 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해 하얀 눈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생명이란 이런 것이다. 눈 덮인 홍매화 가지 아래에서 싹이 나오듯이 저 멀리서 조금씩 태동돼 어느 순간엔가 화사하게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 그 본질이다. 그렇게 지금은 꿈속에서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내년 봄 약초원 앞뜰을 거닐지 누가 아는가. 그리운 사람들과 만나 금낭화 꽃을 함께 구경할 걸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아, 봄이여 어서 오너라/ 하얀 눈꽃은 눈부시어 좋고 /흰 눈 덮인 홍매화는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다/ 저녁 노을 붉은 빛이 금낭화에 드리울 때/ 커피 향 은은함이 가슴을 적신다/ 아, 그리운 사람아/ 몇 천리 머나 먼 길 한 걸음에 달려와 /아싸한 천궁화 술에 취해봄이 어떨꼬’
간간이 눈발이 흩날리는 약초원 뜰엔 아직 금낭화가 없다. 천궁 술잔을 함께 기울일 친구도 없다. 밤이 길어 저녁노을이 드리우기 전에 어둠이 먼저 깔린다. 소꼽친구들과 영수 아재, 세찬이 부부도 저 멀리 있다. 그래도 내년 봄 금낭화는 필 것이고 꽃들은 장관을 이룰 것이다. 나는 금낭화 피는 봄을 기다린다.
<류관희 전 강원도민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