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기부천사’와 기부문화
‘얼굴 없는 기부천사’와 기부문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1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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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이른바 ‘얼굴 없는 기부천사’들의 훈훈한 미담을 신문 사회면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닌 듯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행’의 기사가 얼어붙은 서민들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고 있다. 침체된 경기와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우울한 서민들에게는 청량제와도 같은 ‘살 맛 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3일 경기도 의정부 시청 주차장에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트럭에는 바나나 박스가 가득 실려 있었다. 바나나 13㎏, 100상자였다. 이 배송을 의뢰받은 기사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어려운 소외계층에게 전달해 달라는 말만 남긴 뒤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 ‘얼굴 없는 기부천사’의 바나나 기부는 2011년부터 매년 100상자씩 4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해마다 영하의 추위를 녹여주는 따뜻한 사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도 ‘얼굴 없는 기부천사’들의 선행이 이어졌다. 월곡 2동 주민센터에 누군가가 해마다 쌀 수백 포대를 몰래 갖다 놓고는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이 기부자는 2010년 겨울 10㎏짜리 쌀 100포대를 처음 갖다놓은 뒤 이듬해 설 명절부터 올해 1월까지 매년 20㎏짜리 쌀 포대를 200포대, 300포대씩 갖다 놓은 뒤 사라졌다.

또 월곡1동 주민센터에도 지난 1일 10㎏짜리 백미 100포대를 가득 실은 트럭이 편지 한 통과 함께 도착했다. 월곡동에서 자영업을 하던 익명의 이 후원자는 2년 전 폐업을 했지만, 그동안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처럼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기부천사의 온정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부문화’라는 차원에서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선진국 사례에 비해 그 규모가 보잘것없다. 최근 들어 기부에 대한 인식이 다소 높아졌다고는 하나 특히 재벌이나 부유층들의 참여는 아직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재산이 10억달러 이상인 부자 403명 가운데 15%인 69명이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은 미국의 억만장자들에게 최소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도록 권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의 400대 부자를 대상으로 ‘기부서약 운동’을 시작하며, 약 6천억달러의 기금이 조성될 것을 계획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문화에 턱 없이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개인적인 기부문화는 거의 드문 상황이다. 주로 기업의 기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사회에서의 기부활동은 대부분 개인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활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기부금은 다소 늘고 있는 추세이지만 정기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복지 재단이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기부는 여전히 낮다. 기부문화를 꽃피우려면 다양한 해외 사례를 꾸준히 참고, 일상생활에서 쉽게 기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 우리 주위에는 외롭고 아프고 가난한 이웃이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들의 사정을 외면한 채 아직도 나누기 보다는 모으기에만 급급하며, 나와 내 가족만이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 매여 사는지도 모른다. 사회 지도층이나 많이 가진 자들도 자신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서 차츰 멀어져 가고 있지나 않은지 한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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