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회-12. 칼은 살아서 말한다(7)
130회-12. 칼은 살아서 말한다(7)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0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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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곧 올 것이다. 분명히 낙동강을 건너 진벌성을 치고 황강을 따라 올라올 것이다.”

진수라니는 왕자들에게 적의 침공로를 따라 병력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설명했다.

“이 나라는 너희들의 왕국이다. 너희가 지키지 못한다면 누가 이 왕국을 지키겠느냐? 첫 전투의 승패가 전국(戰局)을 좌우한다. 첫 싸움은 기필코 이겨야 한다. 진벌성의 전투에 첫째가 나가라. 그리고 그 다음 괴야성은 둘째가 나서라. 이 궁성은 내가 맡겠다. 하늘에서 화살이 날아오고 창살이 쏟아져도 두려워마라. 두려움은 곧 패전이다. 너희들부터 죽을 각오를 하라. 죽음을 각오하면 백만 명의 적과 맞서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왕은 왕자들에게 일렀다. 그리고 야로 야철지 고로 장인이 정견모주께 백 일을 기도하여 만들었다는 비검을 한 자루씩 주었다.

“칼은 비겁함을 벰으로 용맹해지고 용맹함을 벰으로 멸망한다. 비겁함의 현혹에 칼을 욕되게 하지 마라. 너희가 칼이 되려할 때 칼은 너희가 될 것이며, 칼에 소홀히 할 때 칼도 너희를 소홀히 할 것이다. 칼이 너희와 하나가 될 수 있게 칼을 길들여라. 그러나 먼저 칼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너희가 스스로를 길들이지 못할 때 칼을 길들일 수 없을 것이다.”

왕자들은 말이 없었지만 왕은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나라의 길이 얼마나 엄중해야 하는가는 구태여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군왕이 가져야 하는 마음의 자세가 얼마나 굳고 곧아야 하는지도 말하지 않겠다. 설령 내가 이 나라의 건곤일척이 될 이 전투에서 죽고 너희들만 남더라도, 설령 만에 하나 이 나라가 적의 침공에 무너지더라도 탄식하지 마라. 그리고 낙심하지도 마라. 슬퍼할 그 기력으로 다시 나라를 세워라. 적에게 빼앗긴 산과 들을 도로 찾아 다시 나라를 세워라. 어쩌면 이것이 나의 유언이 될지 모르겠다만 너희가 따라가야 할 기표가 되기를 바란다.”

왕자들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왕자들이 돌아가고 텅 빈 침소에 홀로 앉았을 때 왕은 밤의 어둠이 두렵고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아우를 죽이고 비를 죽이면서까지 다져왔던 자신의 의지가 혹시 어둠의 막막함에 밀리어 희미해지지는 않을까, 진수라니는 두려웠다. 날이 밝고 진수라니왕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지려 이곳 옥전 선영으로 왔다.

선영은 늘 그대로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선영은 변함없는 그대로다. 억새풀의 생애가 허무하게 꽃가루로 흩어지고 있어도 선영은 그대로였다. 진수라니 왕은 간밤에 왕자들에게 했던 그 말들을 다시 한 번 곰곰이 되뇌며 선왕들의 무덤 앞에 엎드렸다.

시조왕은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하로 구야국을 중심으로 하는 (전기)가야 연맹이 몰락하여 터전을 잃은 유민들을 이끌고 이곳 옥전으로 왔다. 오는 동안 혹한 속에서 얼마는 얼어 죽고 또 얼마는 굶어죽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터전 민과 더불어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철과 금을 제련하여 가야 제일의 나라 중에 하나를 만들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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