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회-12. 칼은 살아서 말한다(6)
129회-12. 칼은 살아서 말한다(6)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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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새로 하한기로 임명된 비조지 주변에도 하한기의 친신라적인 성향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모이고 있다는 것도 이미 파악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지금 당장은 처벌하기가 어려웠다. 신라와 전쟁 준비가 시급한 이때에 그들을 처벌하여 병력의 공백을 가져 와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점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군영에 불순한 뜻을 가진 군장들의 동태를 특별히 감찰하도록 하명했다. 진수라니 국왕이 각 군영을 돌아보는 것은 그와 무관하지가 않았다.

낙동강 수제에서 가야산을 넘어서까지 다라국의 총 15개 산성과 10개소의 군영을 일일이 찾아 나섰다. 자신이 직접 하나 하나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지 않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라(대가야, 고령)국의 최후의 날 군영처럼 병졸들이 채워지지 않아서 성벽만 서 있는 성은 없는가, 군영의 군기고마다 창과 화살은 잘 비장되어 있는가, 일일이 둘러보며 확인을 했다.

야철지마다 딸려 있는 무기 제작소에 가서는 더 많은 칼과 화살, 그리고 창과 방패를 만들 것을 하명하고 군영에 가서는 영(令)을 세우고 군병들의 사기를 북돋우라고 일렀다.

그것은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어쩌면 이것이 이 나라를 위해서 그가 하는 마지막 책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섬뜩하고 불길한 생각이 들 때마다 진수라니왕은 결코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의 주술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걸며 힘주어 칼자루를 잡았다.

대신들과 요직에 있는 군장들을 정전에 불러 신라의 침공에 대비하도록 하명한 것은 가라국이 신라군에 항복했다는 것을 보고받은 지 열흘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명일부터 정전에 들어오는 모든 신료들은 갑옷과 투구를 쓰라. 그리고 칼과 화살로 무장하고 전시의 모든 것을 갖추어라. 전쟁은 바로 성 앞에 와 있다. 그대들이 있는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른다. 그것은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다.”

진수라니왕은 대소 신료들에게 철제 갑옷과 투구를 내리고 칼 한 자루씩을 새로 내렸다.

“지금 이 순간 이후로 신라와의 화친을 말하거나 백성을 현혹하는 말로 나라의 힘을 분열시키는 자가 있을 시에는, 어느 때 어느 자리를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목을 벨 것이다.”

왕의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지금까지 화친을 주장해왔던 하한기 비조지마저 바닥에 엎드려 숨을 죽였다.

“병졸의 관리와 경계를 소홀히 하거나 군영을 이탈하는 군장은 참형에 처할 것이다.”

각 군영의 군장들에게도 갑옷과 말갑옷, 말투구, 그리고 칼 한 자루씩을 새로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자들을 불렀다. 전날 밤 두 왕자를 불러 밤늦도록 신라군의 침공 예상로를 이야기 했던 것도 같은 뜻에서였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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