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울산
박물관과 울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2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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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 앞바다 대왕암이 보이는 곳에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 선생의 추모비다. 최근에는 그 옆에 우현 선생의 제자인 황수영 박사 추모비가 더 세워졌다.

우현은 우리나라 미술사의 아버지라 불리만한 인물이다.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리 미술을 학문화했다. 선생의 명저 ‘조선탑파(朝鮮塔婆)의 연구’야말로 한국미술사의 시원이다.

선생의 주요논문들은 대부분 선생이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을 지내던 시기에 발표됐다. 그래서 선생은 한국 박물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선생의 제자인 황수영, 최순우, 진홍섭 선생은 한국 박물관계에서 ‘개성 3인방’으로 불리며 광복이후 한국박물관을 이끌었다.

제자들은 선생의 논문들을 모아 책으로 엮는 작업도 했다. ‘한국미술사급미학논고(韓國美術史及美學論攷)’, ‘조선화론집성(朝鮮畵論集成)’, ‘한국미술문화사논총(韓國美術文化史論叢)’, ‘송도의 고적’ 등이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이다.

우현 선생은 마흔의 나이에 조국광복을 1년 앞두고 눈을 감았다. 선생이 개성박물관장으로 재임한 것도 10년 남짓이 고작이다. 하지만 선생은 지방의 한 박물관 관장이 짧은 시기에 남긴 저술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대업적을 남겼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박물관을 ‘문화·예술·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역사·고고(考古)·인류·민속·예술·동물·식물·광물·과학·기술·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한다.

울산에서는 울산박물관이 2011년 개관하면서 박물관 시대가 열렸다. 늦어도 많이 늦었다. 하지만 불과 3년여만에 울산에는 9개의 박물관이 등록돼 운영중이다.

울산박물관의 분관인 암각화박물관과 대곡박물관을 비롯해 장생포고래박물관, 울주민속박물관, 옹기박물관, 외솔기념관 등 공립박물관과 사립인 울산해양박물관 그리고 울산대학교박물관이 개관돼 있다. 뿐만 아니라 충렬공박제상기념관, 오영수문학관 등도 박물관 등록을 준비 중이다. 지난 4월에는 울산과학관까지 포함한 12개 기관이 울산박물관협의회를 구성했다. 또 국립산업기술박물관도 곧 울산에 건립될 예정이다. 바야흐로 울산이 박물관 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각 박물관은 인상적인 특별전과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여 울산지역에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던져왔다. 울산에 박물관이 없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때에 출범한 박물관협의회에도 기대할 바가 많다. 하지만 아쉽게도 출범 이후에 이렇다 할 성과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울산의 박물관들만 둘러보는 ‘울산 박물관 투어’도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반구동 서원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서원산과 동천변 백사장이 주 놀이터였다. 가까운 학성공원도 익숙하다. 하지만 그곳이 구강서원과 신라 항구가 있었던 곳이며 정유재란 당시 격전지였음은 한참 지나서 알게 됐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울산의 박물관들이 상세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래서 울산의 박물관들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리고 울산의 박물관들이 축적해 나갈 연구성과가 울산을 얼마나 풍성한 문화도시로 변모시킬지도 흐뭇하게 상상해 본다.

<강귀일 취재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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