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회-11. 사랑은 언젠가 이별이다(6)
119회-11. 사랑은 언젠가 이별이다(6)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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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루에 올라가면 멀리 산 아래 도읍이 눈에 들어왔다. 그 우로는 황우산성이 있고 강은 마치 하늘에서 하강한 거대한 한 마리 뱀처럼 도성을 감싸 안으며 굽이쳐 그 양 옆에 거대한 평원을 적시고 있었다. 아득한 세월 이래로 강은 저 망망한 평원에 오곡을 풍성히 길러 도성의 수만 백성의 양식을 만들어 주었다. 진수라니는 오래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먼 산천을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북쪽의 석굴 쪽으로 바라보면서 길게 숨을 쉬었다. 이제 왕비는 저 중앙의 석단 아래로 끌려오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진수라니 국왕은 가슴이 아팠다. 진수라니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발을 옮겨 성루를 내려왔다.

오시. 왕비를 처형하기로 한 시간이다.

하한기와 상수위를 비롯한 대신들과 여러 산성의 성주와 군장들이 이미 석단 아래 와서 침울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진수라니 국왕은 상수위를 통해 이미 조정의 신료들과 여러 산성의 성주들과 지휘 군장들에게 하명해 두었기 때문이다.

진수라니 국왕이 단상의 교의에 좌정하자 대신들이 좌우로 길게 도열했다. 그 뒤로는 군병들이 열과 오를 맞추어 섰다. 분위기는 숙연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왕의 왼쪽에 선 하한기나 오른 쪽에 서 있는 상수위도 굳은 표정은 마찬가지였다. 둘은 말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죄인을 데려오라!”

진수라니왕은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말에 어떤 감정이 실려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다만 덤덤하게 일상 속에서 나라의 뜻을 하명하던 그대로의 음성이었다. 왕은 미동도 없이 한참 동안이나 멀리 성 밖을 내다보았다. 이윽고 왕비의 모습이 보였다.

두 손이 묶인 채 군병들의 부축을 받으며 단 아래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조용하던 군병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었다. 왕비의 모습은 초췌했다. 걸레나 마찬가지인 옷을 걸치고 형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지만 얼굴의 윤곽엔 젊은 시절의 미색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25년이란 세월을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석굴에서의 흔적이 젊은 시절의 미색과 섞이어 처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눈은 살아 있었다. 25년이란 세월의 절절한 사연과 한이 눈언저리 곳곳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원망인 것 같기도 하고 슬픔인 것 같기도 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마음속에서부터 젖어서 스며나오는 것 같았다.

“죄인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왕의 뜻을 전달받은 상수위가 전언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죄인은 누구에게나 기탄없이 말하시오.”

상수위는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를 갖추어서 다시 말했다.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인은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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