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換節)의 무게를 가늠하며
환절(換節)의 무게를 가늠하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20 2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 지는 저녁/ 나무들이 환절의 무게를/ 나이테로 가늠하고 있다/ 늦가을의 그물이 출렁이자/ 땅거미가 한 뼘씩 줄어든다/ 철새들이 바람을 열고 사라진 허공,/ 눈시울이 붉어진다/ 철 지난 안부를 가로막던/ 당신의 뒷모습이 그립다/ 가을이 폐지되었다는 풍문,/ 귓속의 녹을 닦아내야겠다/ 마른 꽃들이 엇박자로 진다’(자작시 ‘환절기’)

11월은 두 개의 계절이 교차하는 이별과 만남의 달이다. 나의 삶에서 이별이란 언제나 아련한 통증을 동반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해묵은 유물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운 것은 아름답다’는 표현처럼 조금은 아프더라도 그리움이 없는 삶은 살지 않겠다던 내 자신과의 약속은 아직도 건재하다. 이제 나와 동거(?)했던 계절 하나가 깊은 그리움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어느 시인은 가을과 겨울 사이를 ‘가울’이라 표현했다. 늦가을을 벗겨내는 겨울의 문턱, 입동(立冬)이 이미 지났고 내일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갑자기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지곤 했다. 그래서 소설 무렵에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른다. 첫눈이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은근히 마음이 설레는 것은 새로운 계절이 우리에게 안겨다 줄 어떤 ‘변화의 의미’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11월의 탄생석을 검색해 본다. ‘토파즈(topaz)’다. 우정·우애·희망·결백을 상징하는 토파즈는 무색투명에서부터 노랑·파랑·갈색 등 매우 다양한 색이 있는데, 그중 황금빛의 짙은 노란색 토파즈가 가장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황옥(黃玉)’이라 불리는 토파즈. 특히 건강과 희망을 상징한다고 하니, 그 가치를 높이 사 줄 만하다.

탄생석은 폴란드와 중부 유럽에 이주해 온 유대인들에 의해 비롯된 풍습인데, 12가지 보석을 1년의 열두 달과 견주어 자신이 태어난 달에 해당하는 보석으로 장식용품을 만들었다. 이러한 12개의 보석을 탄생석이라 일컬었고, 이 보석을 가지면 행운과 장수, 명예를 얻는다고 믿어 왔다.

탄생석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 해 동안 나와 동고동락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뮤직앱에는 지난달부터 이미 11월의 맛을 한껏 북돋워 줄 ‘겨울의 곡’들이 채워지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가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연주곡 앨범 ‘December’, 슈베르트의 대표적 연가곡 ‘겨울 나그네’, 그리고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四季)’ 중 ‘겨울’ 등이 계절을 빗댄 단골 메뉴로 올라 있다. 그중에서도 비발디의 사계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부문에서 당당하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발디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이 곡은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라는 부제를 단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 합주를 위한 12곡의 협주곡 중 4곡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간단한 표제를 붙여 사계라 부르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첫선을 보였을 때 이들 4개 바이올린 협주곡에는 이탈리아어로 된 소네트(Sonnet·14행 시)가 서문처럼 붙어 있었다고 한다.

바로크 음악의 최대 작곡가 비발디의 사계는 이처럼 4편의 시와 인연을 맺었다. 4계절 분위기와 색채를 즐겁고도 섬세하게 표현해낸 표제음악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서서히 저물어 가는 갑오년 한 해를 차분히 되돌아보며 비발디 자신이 쓰고, 이 작품의 표제 구실을 하고 있는 4개의 소네트 가운데 ‘겨울’을 조용히 음미해 본다. 환절(換節)의 무게를 천천히 가늠해 보면서.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