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회- 11. 사랑은 언젠가 이별이다(5)
118회- 11. 사랑은 언젠가 이별이다(5)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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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말씀 드리기에 황송하오나, 말을 함으로써 나라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음으로써 나라를 망치는 것이옵니다. 부디 오늘 신(臣)의 말을 통촉하시어 나라의 길이 바로 갈 수 있게끔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남부여와의 관계를 버리시고 신라와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시옵소서. 그것만이 이 나라가 피 흘리지 않고 영원히 사직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옵니다.”

하한기는 눈을 들어 국왕을 쳐다보았다. 하한기의 말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또 그 말인가? 나라를 지키는 것은 과인에게 맡겨진 선왕들의 뜻이며 이 나라를 열어주신 정견모주의 뜻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분명코 말하건데, 나는 남가라(금관가야)나 탁순국(창원가야)처럼 나라를 가져다 바치고 투항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다들 물러가라.”

국왕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앞을 주시했다. 신료들이 빠져나가고 열린 문 사이로 텅 빈 전정 뒤로 견고한 성첩이 보였다. 왕궁을 둘러싼 성첩 위로 활과 창으로 무장한 채 파수를 보고 있는 초병들의 모습이 분주해 보였다. 사심 없는 모습이었다.

‘오직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는 것은 저렇게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인가. 그래, 저들이 있다면 열 명장이 안 부럽다. 나라는 분명히 지켜질 것이다. 분명히……’

국왕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환두대도의 손잡이를 굳게 쥐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산성으로 오는 길은 가팔랐다. 말이 기슭에서 미끄러지며 무릎을 꿇기도 했다. 기슭을 넘으면 또 기슭이 있고 산줄기는 산줄기로 이어졌다. 그 줄기를 따라가면 갑자기 길이 뚝 끊어진 듯 절벽이 막아선 곳도 여럿 있었다. 무태산성은 그렇게 천험의 지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한 위용으로 서 있는 성문루를 기점으로 성벽은 산세를 따라 좌우로 뻗어 있었다. 조부왕께서 내성을 축조하고 10년이 지난 뒤에 부왕이 외성을 쌓아서 이날에 이르는 것으로 비상시에 행궁으로 쓰일 수 있게 한 곳이었다.

길이가 4905보(약 4km)나 되었으며 중문 이외에도 동과 서에 각각 문이 하나씩 있었고 군기고와 창고, 그리고 성주의 처소와 군장의 처소와 군병의 처소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었다. 군관이 30여 명 기병, 보병, 창졸을 포함하여 군병이 6백여 명이나 되었다. 이 군병들은 궁성의 변고가 있을 때 지원하는 제2의 호위군의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 성의 북쪽 계곡 깊숙한 석굴 감옥에는 왕비가 갇혀 있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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