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심의 사회에서 시스템의 사회로
자비심의 사회에서 시스템의 사회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8 2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날 아침 TV 뉴스의 내용이다. 아직도 연탄에 의지해 겨울을 나는 이들이 많으며 특히 도회지의 독거노인들 중에는 연탄이 넉넉지 않아 이번 겨울을 힘들게 지내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뉴스 진행자의 말에 따르면 경기가 악화된 탓에 연말 이웃돕기 기부가 예년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화면에 나온 한 할머니는 연탄이 몇 장 남지 않은 창고를 열어 보이며 내년 삼월까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했다.

요즘엔 밤에 추워서 잠이 안 온다고 하소연하는 얼굴이 마냥 어두웠다. 한 자선단체 간부는 ‘연탄은행’이라 불리는 창고를 열어 보이며, 예년 같으면 대기업에서 2만 장 정도씩은 기부를 해 왔는데 올해는 만 장도 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뉴스를 보며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시민들의 기부 문화는 분명 숭고한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가 더욱 성숙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뉴스의 보도처럼 우리 사회가 빈곤층 노인들의 겨울 난방 문제를 시민들의 기부에 기대어 해결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기부는 우리가 권장할 선행일 뿐 결코 의무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추워 못 견디겠다고 투덜대는 그 노인들은 참으로 후안무치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타인의 자비심에 기대어 사는 이가 베푸는 측의 자비심이 적다고 화를 낸다면 그건 후안무치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 추운 날씨에 노인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그 투덜거림이 이해되지 않을 바도 아니니, 아마도 이게 지금 우리 사회의 한계인가보다.

좋은 사회란 좋은 시스템을 갖춘 사회이다. 그리하여 항시적인 문제는 스스로의 시스템으로 해결해 가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 것이다. 물론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사회라 할지라도 뜻하지 않은 문제는 늘 생기는 법이며, 성숙한 사회는 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문화를 갖는 법이니 그것이 바로 성숙한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기부 문화일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닥치는 노인 빈곤층의 난방 문제는 결코 뜻하지 않은 문제랄 수 없으며, 따라서 이런 문제는 시민의 기부 문화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분배나 복지와 같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시스템이 잘 구비된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사회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며 결코 후안무치한 품성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우리 사회 곳곳에 차고 넘치는 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봉사 정신 자체는 숭고한 것이지만, 봉사활동이 빈번한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바람직한 사회란 항시적인 사회적 과제들을 스스로의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법이니, 역설적으로 봉사활동이 전혀 필요치 않는 사회야말로 진정 좋은 사회다. 물론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의 사회라 하더라도 언제나 뜻하지 않은 문제는 생길 수 있고, 그런 경우 그 사회 구성원들의 높은 의식 수준이 만들어내는 봉사활동은 실로 값진 것이다. 다만 상시적인 과제를 구성원들의 봉사활동에 기대어 해결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당당하게 살면 좋겠다. 누군가의 자비심에 눈물 흘리며 고마워하다가 그 베푸는 자비가 줄어들면 볼멘소리로 투덜대는 염치없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면서 불의의 재난에 대해서는 모두가 서슴없이 팔 걷고 나서는 성숙한 사회에서 살면 좋겠다는 말이다.

<서상호 효정고 교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