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장사익
소리꾼 장사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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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인 15일 늦은 저녁, KBS 울산홀을 빠져 나오던 관객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귀엣말을 남겼다. “참 재미있었지?” “응, 보러오길 참 잘했어.” “티켓 값이 하나도 안 아까워.” “7순이 가까운데도 너무너무 힘이 넘치셔.”

육감으로 짐작컨대, 40?50대 가정주부들 같았다. 그녀들의 대화 속에는 2시간 10분짜리 공연 시간이 한시도 지루하지 않더라는 감탄도 섞여 있었다. 장사익 소리판 ‘찔레꽃’의 울산공연이 막을 내리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그녀들은 만원도 더 넘는 장사익 음반 구매에 넋을 잃고 있었다.

‘소리꾼’으로 통하는 장사익, 그는 스스로를 ‘장돌뱅이’라 불렀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가객(歌客) 장사익은, 비교 대상이 되는 당사자들에겐 대단히 죄송한 얘기지만, 현 철이나 설운도와는 차원과 격이 너무도 달랐다. 시어를 즐겨 노랫말로 삼았다. 그의 노래 속에는, 자신의 곡이든 이미자 노래의 편곡이든, 신명이 넘쳤고 한(閑)과 한(恨)이 묻어났다.

좌중을 웃기고 울리는 끼와 프로근성도 유감없이 쏟아냈다. ‘댄서의 순정’ 노랫말 한 가락을 비틀면 폭소로 변했고, ‘나 그대에게’의 가사를 살짝 개사하면 박수로 둔갑했다. “오늘밤 문득 드릴게 있네”가 “오늘 밤 전부 가지세요”로 바뀌는 순간 누가 감히 웃음을 참을 것인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해금과 콘트라베이스의 조화도 절묘했다. 아카펠라 중창단 ‘솔리스트’의 중후한 ‘거들노래’도 큰 몫을 해냈다. 공연 초입, 녹음으로 ‘찔레꽃’이 흘러나오는 순간 공연장 화면에는 ‘흘러간’ 공연 포스터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노래 벗’들의 사진들도 줄줄이 스쳐 지나갔다. ‘장돌뱅이 장사익’이 몇 말씀을 덧붙였다.

“시간은 참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저한테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서 금년이 노래한 지 만 20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노래했을 적의 친구들- 임동창, 김광석, 김기영… 이렇게 같이했던 처음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세월이 자꾸 흘러서 어느새 머리는 서리가 내리고 얼굴은 줄(주름)도 많이 가고 그렇습니다.” 노래무대에 처음 오른 때가 마흔여섯쯤 되던 해라고 했다.

“저는 늘 새벽에 좀 일찍, 보통 4시 반에서 5시 정도에 일어나는데, 일어나면 동녘 하늘의 별을 꼭 봅니다. 한 20년 별을 봤더니 제가 그만 별이 됐어요. 별이 영어로 뭐지요?” 그는 ‘스타덤’에 오른 사실을 농으로 표현할 줄도 알았다. 여러 놀라움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말이 하나 있었다. 자신의 신곡(新曲) 셋 중의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아, 우린 서로 만나 무엇을 버릴까?’라는 ‘어느 목사님’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라 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물머리’란 이름의 양수리(兩水里)를 떠올렸다.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두 물이 (두물머리에서) 합쳐/ 큰 한강 되어 흐르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린 무엇을 버릴까?’

그것은 남북통일에 대한 그의 간절한 희원(希願)이었다. 이날 밤 노래꾼 장사익은 절규를 닮은 그의 노래 속에 절절한 통일의 염원을 담아내고 있었다.

한 평자는 그의 음악세계를 이렇게 평한다.

“그렇게 널리 알려진 가수는 아니지만 골수 팬 층이 두껍기로 유명하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나 좋아할 봄날은 간다, 봄비, 대전부르스, 비 내리는 고모령, 자신의 대표곡인 찔레꽃 등등 그가 부르면 전혀 다른 노래로 태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김정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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