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회-10. 그 겨울의 (10)
113회-10. 그 겨울의 (10)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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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더 큰 전쟁의 환란을 자초하기보다는 현자의 혜안으로 피해가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한 판단을 미루면 미룰수록 그 참혹함은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그만 읽어라!”

진수라니왕의 명에 따라 상수위가 읽기를 멈추었다.

“그래, 뻔하지 않은가? 그들에게 나라를 순순히 가져다 바치란 그 말 아닌가.”

진수라니의 시선이 다시 여러 얼굴을 훑고 갔다. 신료들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 바람까지 동반한 빗줄기는 더 요란한 소리를 냈다. 빗속에서도 성첩을 순시하고 있는 군장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멀리서 들려왔다. 빗소리는 다시 요란해졌다.

“이제 돌아가보겠습니다. 부디 통촉하십시오.”

진파라가 예를 갖추고 일어섰다.

“그래, 가 보아라. 설령 니가 그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며 이 나라의 뜻인 줄 알아라.”

진수라니는 돌아서 나가는 진파라의 등에 대고 마지막 말을 했다. 그 말이 냉랭하게 정전을 울리고 진파라를 따라 문밖으로 퍼져 나갔다.

진파라는 신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진파라가 두 명의 호위병과 함께 신라의 비사벌주로 돌아가기 위해 황강에 닿았을 때 강물은 많이 불어 있었다.

진파라는 먼저 강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뒤돌아보았다. 빗줄기 속에 멀리 다라의 궁성이 보였다.

“이제는 돌아보지 마라. 그리고 가자.”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호위병들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말을 돌렸다. 호위병의 말이 좌우에 앞서고 진파라의 말이 그 뒤에 서서 강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왔다. 호위병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진수라니왕의 명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호위군장 능치기말의 화살이었다. 진파라도 등에 화살을 맞아 강으로 추락했다. 호위군병과 말들도 차례대로 화살을 맞고 옆으로 꼬꾸라졌다. 강물은 소리 없이 그들을 휩쓸어 흘러갔다.

이 사실이 다라국 조정에 알려진 것은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진수라니왕은 친히 이 사실을 정전에 모인 신료들에게 알렸다.

“나라를 배신한 진파라는 이 나라의 이백년 사직의 뜻으로 처단하였다. 그는 강물과 함께 황천으로 갔다.”

진수라니의 말에 대신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대신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신라와 화친을 주장하는 쪽과 백제와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쪽으로 신료들의 의견이 갈라지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 모이기 시작했다.

조정의 회의에서도 양측의 의견이 확연하게 달랐다. 진파라를 신라로 돌려보내지 않은 것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신료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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