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회-10. 그 겨울의 비(8)
111회-10. 그 겨울의 비(8)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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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구하러왔다고? 나라를 신라에 가져다 바치고 구걸해 얻은 그 목숨으로 권력을 얻고, 가락국 개국의 시조이신 수로왕의 피를 나눈 그 연맹국의 군병들을 잔혹하게 몰살시킨 김무력이란 놈처럼, 나라를 신라에 가져다 바치고, 너 하나의 목숨과 너 하나의 부귀영화를 꿈꾸는 놈이 신라의 뜻을 받들어 여기에 오지 않았느냐? 그러고도 나라를 구한다는 말을 하다니 이 무엄한 놈!“

진수라니의 눈에서 다시 불이 튀었다.

“결코 나를 죽일 수 없을 것입니다. 나를 죽인다는 것은 신라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걸 모르고 하는 소리이오이까?”

“나는 너를 죽일 것이다. 분명히!”

진수라니왕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너를 죽여서 다시는 더러운 네놈의 발이 이 나라의 땅을 밟지 못하게 할 것이다.”

“만약 나를 죽인다면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이 나라는 신라군의 창칼에 짓밟히게 될 것이며, 이 궁성도 불의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어디 그래도 나를 죽인다는 말을 다시 하시겠습니까?”

“네놈이 신라의 개가 되어도 단단히 된 모양이구나. 어디 변절자의 변이나 핥아먹던 그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느냐.”

진수라니왕은 서안에 놓여있던 고배를 집어 진파라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고배는 빗나갔으나 그 속에 담겨 있던 물이 진파라의 얼굴에 쏟아졌다. 진파라는 물을 뒤집어쓰고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분명히 알아라. 이 나라가 가야 할 길이 신라의 창칼이 무서워 달라진다면 그것이 나라이겠느냐?”

“통치자는 시대를 읽어야 하며 나라가 나아갈 길을 알아야 합니다. 신라가 바로 길입니다. 신라는 피해갈 수 없는 길입니다.”

“뭐라, 신라가 길이라고? 그 호전적인 폐륜의 집단이 길이란 말이야?”

“말을 삼가셔야 합니다. 그 말이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진파라의 음성도 점점 높아졌다.

“한 나라의 국왕의 목을 참수하여 개나 돼지도 밟고 다니게 하는 그 폐륜의 집단들이 길이란 말인가?”

“이제 가라(대가야, 고령)나 아라국(함안가야)도, 심지어 남부여(빽제)마저도 신라에게 나라를 넘겨주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미리 신라와 화친하십시오.”

“닥쳐라. 설령 하늘의 뜻에 의해 화친하더라도 네놈의 뜻을 따라서 화친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수라니왕의 계속되는 분노에 옆 자리에 앉은 상수위와 이수위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신라와 화친하는 것이 피 흘리지 않는 길입니다. 한 인간에게도 흥망의 때가 있듯 나라에도 흥망성쇠의 때가 있습니다. 이제 신라의 융성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듣기 싫다. 감히 네놈이 나를 설득하려 드느냐.”

진수라니의 얼굴이 떨렸다.

“네 놈이 저 강을 건너가기 전에 죽일 것이다!”

진수라니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진파라를 노려보았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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