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회-10. 그 겨울의 비(7)
110회-10. 그 겨울의 비(7)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0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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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가혹한 그 침묵의 늪 속에서 벗어나려는 듯 진파라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진수라니는 뚫어지게 그의 등을 바라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당혹함일까, 믿었던 사람에게서 오는 배신감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한 인간에게서 느끼는 실망감이었을지 모른다.

관산성의 전쟁이 끝나고 영토 굳히기에 나선 신라는 이미 오래 전에 자국의 영토에 편입시켰던 옛 비사벌국에 비사벌주를 설치하면서 낙동강 서쪽으로 진출의 의사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주의 핵심관리자로 다라국의 하한기였던 진파라를 임명했다. 거기에는 김무력의 건의가 크게 작용했다. 지금 진파라는 다라국의 하한기가 아니라 신라 비사벌(창녕)주의 관리가 되어 다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정전에 꿇어앉은 것이었다. 빗소리가 등 뒤에 쏟아지는 화살처럼 저주스러운 소리가 되어 귀를 울렸다.

“무엇하러 왔느냐?‘

진수라니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흘렀다. 배석한 상수위와 이수위는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엎드려 있었다.

“무슨 용무가 아직 남아서 니가 버린 이 나라를 찾아왔느냐? 설마 너가 인간의 탈을 쓰고 이 나라의 수만 백성을 배반하고 다시 그들 앞에 와서 용서를 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진수라니의 말이 격해졌다.

”소인이 온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옵니다.”

“뭐라고,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고? 그럼 누구의 선택이냐? 그럼 누구의 선택이냐 말이다!”

진수라니의 말이 벽력같은 소리를 냈다.

“한 나라의 국왕의 뜻을 받들어 온 것이옵니다.”

격노한 절대자인 왕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진파라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의 눈에도 점점 힘이 들어가서 바닥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빳빳해졌다.

“한 나라의 뜻을 배반하고 떠나간 놈이 또 한나라의 뜻을 받들어 왔다고? 네놈이 택한 그 나라, 그 나라의 뜻도 배반해 보지 그러냐.”

“내가 이 나라를 떠난 것은 배반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며 결국은 이 나라를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더러운 주둥이 닫지 못하겠느냐? 일천 명의 휘하의 병졸들을 전장에 남겨놓고 달아나 놈이 이 나라를 위한 길이었다고?”

왕의 목에서 칼이 부딪치는 것과 같은 쇳소리가 났다

“일천 명의 군병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 이 나라 국왕인 전하의 결단이었지, 어찌 소인의 뜻이었습니까?”

진파라도 밀리지 않았다.

“그것이 너의 결단이 아니었다고? 나라의 뜻을 저버린 몸이 어찌 나라를 말하고 있느냐?”

“그래서 내가 오지 않았습니까. 이 나라를 구하려고 오지 않았습니까.”

진파라가 고개를 쳐들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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