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회-10. 그 겨울의 비(5)
108회-10. 그 겨울의 비(5)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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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 왕비의 아버지, 왕의 장인이기도 한 나라의 군주의 목을 돌려주지 않고 도당의 계단 아래에 묻어 밟고 다닌다니, 어찌 남부여(백제)의 백성들이, 그 나라의 대신들이 살아 있다면 그 원한을 돌려 갚으려 하지 않겠소. 전쟁은 또 일어날 것이오.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또 음모를 말하겠소? 또다시 전쟁에 나가야 한다면 그 때도 음모를 말하고 남에게 떠넘기고 그렇게 말 하겠소이까?“

상수위의 말은 듣는 사람의 귀를 차고 나가는 화살처럼 느껴졌다.

“상수위는 그렇게도 전쟁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란단 말이오. 무모한 남의 나라 전쟁에 병사를 파병하여, 그것도 나라를 지키는 산성의 병력을 빼내어 산성은 텅 빈 채 남겨놓고 전쟁에 파병하여 종마 같이 팔팔한 일천 명의 병사들의 목숨을 광란적인 피의 잔치에 바치고도 다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 말이오?”

다시 야도지가 들고 나섰다.

“누가 전쟁을 원한다고 하였소? 누가 마음대로 병사를 빼내어 남의 나라에 보냈단 말이오?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병사를 파견한 것이지, 누가 개인의 마음대로 병사를 파병할 수 있단 말이오?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생각하고 생각하여 의논하고, 나라의 율령에 의해 행해진 일을 마치 개인의 뜻에 의해서 행해진 일처럼 오도하다니, 괴변과 말의 난동질을 서슴지 않는 그대들이야 말로 불지옥에 떨어져 혀가 잘리고 입이 찢어져야 정신을 차리겠소?”

상수위는 손으로 바닥을 치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뭐라고? 입을 찢는다고? 내가 먼저 그대의 입을 찢어 주어야 되겠는가?”

야도지 장군은 눈을 치켜뜨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색이었다.

“그만들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과인 앞에서 이것이 무슨 행패들인가?”

진수라니왕이 칼을 빼들고 서안을 쳤다. 서안이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과인이 현기증이 일어 잠시 침묵했거늘 그대들이 이리도 무엄하단 말인가? 한 나라가 법도를 잃으면 망하는 것이며, 신하가 군주에게 섬김을 잃으면 이미 군신의 길이 아닐 것이다. 오늘 그대들의 말은 광란의 칼부림과 다르지 않았다. 비록 피 흘리지 않고 몸이 두 동강나지 않았지만 그대들의 말은 이미 사람을 죽인 것과 무엇이 다르며, 군신의 길을 포기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찌 이다지 언행이 무례하단 말이냐!”

진수라니 국왕의 고함소리가 정전을 울렸다.

“황공하옵니다.”

신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몇몇 신료들은 고개조차 숙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과인이 부덕한 탓이며 불민한 탓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나의 덕이 부족하고 내가 어리석어 이 나라의 만백성이 고통 받는 일이 일어났다면 어찌 나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과인의 잘못으로 그대들이 다투지 마라.”

진수라니왕의 말은 자신을 책망하는 말처럼 들렸다. 잠시 불콰하던 분노의 감정이 사라지고 다시 평정을 되찾은 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말을 하고 있는 진수라니 국왕은 마치 자신의 몸을 밟고 가는 장수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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