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홍콩에서 시작돼 중국 등으로 확산됐던 ‘사스’는 호흡기를 통해 전파됐기 때문에 전염력과 전파 속도 등이 에볼라보다 훨씬 빨랐다. 또 사망률이 11% 정도로, 50%에 이르는 에볼라보다는 치사율이 낮았지만 초기 감염된 환자들은 대부분 사망했다. 우리나라와 교류가 빈번한 이웃나라에서 발병했기 때문에 그 공포감은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지금의 에볼라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정확한 진단 방법도 없어 일단 유행지역을 여행한 병력과 발열, 호흡기 증상만 있으면 일단 의심환자로 판정해 격리시키는 게 방역대책이었다. 당시에는 방호복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마스크만 쓰고 보건소를 찾는 환자를 진료했는데, 대부분의 환자는 유행지역을 여행한 적이 없으면서도 막연한 공포심에 질려 기침만 해도 보건소를 찾았다.
어느 날 유행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지 5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 발열과 호흡기 이상 증상을 보여 보건소를 찾아왔다. 일단 지침대로 의심환자로 진단하고 환자를 격리시키기 위해 지역의 한 민간병원에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절대로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제대로 된 격리병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만약 사스 의심환자가 자기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모든 환자가 다 퇴원할 것이고 했다. 할 수 없이 부산대학교병원에 연락을 취해 환자를 부산으로 후송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유관기관의 협조로 2시간을 엠브란스 안에서 대기한 끝에 겨우 입원시키기는 했지만 당시의 황당한 마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스와 조류독감, 신종 플루의 유행을 큰 문제없이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인 대처가 훌륭해서가 아니었다. 바이러스들이 추위에 약하거나 예상했던 것보다 전염력과 치사율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실망스러운 것은 국가적 패닉 상황에까지 이르렀던 관심이 위기가 지나자 급격히 식어버려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버렸다는 사실이다.
에볼라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려면 격리병상 수준 정도가 아니라 일반인을 통제하는 격리건물과 의료진소독을 위한 에어커튼, 에어샤워, 보호장구류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지정 시설 17개 병원 가운데 그런 병원은 한 곳도 없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만약 앞으로 직접 접촉에 의한 전염이 아니면서도 에볼라 바이러스 정도의 치사율을 가진 신종 호흡기 감염병이 유행하면 이런 정도의 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극복해내기가 어렵다.
지금은 에볼라의 위험을 극복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긴 다음에는 어떠한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국민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만큼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데 예방적인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순호 울산과학대 물리치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