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살 때의 행복
법대로 살 때의 행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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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연로하신 모친이 KTX로 서울로 가시기에 열차 안으로 들어가 모시다, 그만 내리지 못하고 열차가 출발하게 되었다. 참으로 당황스러워서 열차승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하였는데 그 분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고 대구에서 울산으로 오는 차표까지 무료로 준비해 주셨다. 내가 500원짜리 입장권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최고 10배까지 벌금을 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때 내 마음에 떠오른 제일감은 이랬었다. ‘아! 법대로 사니까 행복하구나! 앞으로는 정말 법대로 살아야겠구나’ 하는 작은 기쁨과 감동이 마음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500원의 행복이랄까….

‘문명사회에서 자유는 법률의 아들이다’, ‘법률의 목적은 평화이다’라고 주장한 학자들의 말이나 ‘자유롭다는 것은 법률에만 복종하는 것이다’라고 설파한 법학자 포이에르바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법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를 주고 인간다움을 부여하는 최선의 방법이 된다.

그러나 법을 지키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니라고 답할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온다.

실정법을 지키지 않고 거리시위로 나서는 것이 마치 민주화를 위한 거룩한 행동인 양 행세하며, 의식과 양심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도리로 치부되는 사회, 경제적 이득을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이익을 챙기는 경제행위, 거기에 더해 이들을 부추겨 이익을 얻어내려는 정치인들과 기업인, 그리고 언젠가부터 법과 규정, 그리고 사회규범을 따라 살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가 된 것은 아닐까 걱정될 정도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경구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를 조명해 보자. BC 399년, 소크라테스는 기소 당한다.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영적인 것들을 도입하는 죄를 지었다. 그리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죄를 범하였음. 구형은 사형.”

이 말이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견해는 차치하고, 사형집행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권하는 친구 크리톤에게 한 말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탈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스란히 사형을 받아들인다. 악법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며, 집단의 질서를 위해 현행법이 비록 악법이라도 준수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법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통해 훌륭하게 사는 것과 아름답게 사는 것 그리고 정의롭게 사는 길을 택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주장하는 기류가 거대하게 흐르고 있다. 복종과 희생, 그리고 원칙의 존중 같은 전통적 가치는 구겨서 던져버린 담뱃갑 같은 신세가 된 것은 아닌지 가슴이 답답해 온다.

엄격한 법집행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에서는 기본적인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경우의 벌금은 당연하고, 지하철에서 물을 포함하여 음식물을 먹을 때의 벌금이 약 40만원, 화장실 용변 후 물을 내리지 않을 때에 40만원, 침 뱉다 적발되면, 초범 때 80만원, 재범 때 16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국민의 자유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비난도 많지만,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게 살기 좋은 나라가 이 나라가 아니던가?

성경에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회조직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비유해 볼 때, 사람의 마음들은 뉴런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결선은 마치 우리 몸의 실핏줄처럼 양분을 공급해 주는 통로가 된다.

소망하기를 그 길을 통해 정의가 물같이 흐르고, 공의가 막히지 않고 흐르는 강물이 되어 우리 사회가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기쁨과 행복이 전달되는 통로가 되고, 자유함과 소통이 운행되는 마음줄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서운 울산과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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