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제,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20 2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잘못된 과거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 어둠을 드러내게 된다.

그것은 국가나 개인에게도 똑 같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공부하여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지만 되풀이 된다. 그 속에 우리들의 슬픈 삶이 녹아 있다. 그런 삶의 이야기가 우리 주위에서 끊임없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삶이라고 한다.

여기 시대를 잘못 타고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이 가족을 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울산제일일보 10월 10일자 1면에 재중 한국인 3세 호태영씨의 ‘조상뿌리 찾기’란 사연이 소개되었다. 1930년대 그의 증조부는 일제의 강제징용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갔다. 증조부는 당신의 자식들을 침략국인 일본을 위해 전쟁터로 가는 것을 결코 좌시(坐視)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깐 이 나라를 떠나 피해 있으면 가족들은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낯설고, 아는 이 하나 없는 그 먼 길을 나섰다. 그렇게 나라 잃은 백성은 고국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2007년에 중국에서 일제의 강제징용을 피해 중국으로 피난 온 우리의 동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을 만나면 반가워서 고향이 어디냐고 꼭 물어본다. 우연히 그분들 중에 “내 고향은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라고 말하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울주군청에 근무하는 나는 너무나 반가워서 고향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친척분이 있는지를 물어 보았지만 그분은 고향소식을 전혀 듣지 못해서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분이 바로 호태영씨의 부친인 호승만씨였다.

그분을 통해서 동포들의 삶을 보고, 안타까운 우리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돌아와서 그분의 뿌리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웅촌면에는 호씨라는 성씨를 가진 이는 없었다. 웅촌면이 고향이라는 단순한 그 정보만으로는 어디에도 호씨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지난 9일 한글날에 증조부가 고향을 떠난 84년 만에 그 후손인 호태영씨가 울산땅을 밟았다. 나는 그와 함께 고향에 대한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다. 남구 달동이 아닌가 해서 주변도 탐색했다. 하지만 많은 세월이 지났고, 고향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 중국에 있는 그의 아버지와 통화를 했지만 할아버지에게 말씀만 들었기 때문에 고향에 대해서 더 아는 것은 없었다.

나는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할까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알지 못하면 나를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호씨는 흔한 성이 아니니 혹시 울산에 사는 호씨의 친척을 아는 분이 연락을 해 오기를 바라며 언론을 이용해 보기로 하고 신문사를 찾게 되었다.

신문사를 나와 선조들의 고향을 보여 주기 위해 동북아에서 맨 먼저 해가 뜨는 간절곶으로 갔다.

“내 고향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곳인 줄 이제 알았습니다. 반드시 제 조상을 찾아 부모님의 노후를 고향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호태영씨를 보며, 아직도 먼 고향 땅을 꿈속에서만 보고 있을 그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고향을 찾아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나라 잃은 백성의 후손이고국을 찾아 와 고향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이제는 울며 떠난 그들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슬픈 우리의 역사이다.

<김봉대 울주옹기종기도서관 관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