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회-9. 가자 관산성으로(1)
93회-9. 가자 관산성으로(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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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성 회의가 끝난 뒤 남부여(백제)의 정책은 진수라니왕의 예측을 빗나가지 않았다. 성왕은 가야 여러 나라에 동진과 남제 등에서 받아들인 선진 문물을 전해주고 왜국에도 기술과 문물을 전해 주면서 자신이 의도한 바를 이행해 나갔다.

성왕 26년(548년) 1월 왜국이 낙동강 인근에 주둔 시킬 병사를 보내겠다는 약속이 있고나서 아라국(함안가야)은 고구려와 내통해서 백제의 독산성을 침공 했다. 백제와 왜 연합군이 아라국 동쪽 6성에 주둔하게 되면 아라가 백제의 속국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라국왕이 먼저 고구려를 이용해서 백제를 친 것이었다. 그러나 왜와 신라 원군의 지원을 받은 백제가 독산성(오산)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아라국은 더 빨리 백제에 속국화 되었다.

아라국마저 사실상 백제에 속국화 되자 가야 연맹의 여러 나라에서 여러 가지 망국적인 풍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라국의 실책으로 그 피해가 다라국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을 진수라니 국왕은 뼈저린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민심에 망조가 들면 나라는 망한다고 했는데……’

이러한 생각이 진수라니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진수라니 왕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다라국(합천가야)의 민심의 동요가 가라국 악공 우륵이 신라에 투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 심해졌다. 아라국이 백제의 속국이 되었다는 말이 떠돌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민심의 동요는 가라(대가야, 고령)의 월광 태자가 속세를 버리고 출가했다는 풍문과 악공 우륵이 신라 진흥왕을 찾아가서 투항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 심해졌다.

가라나 아라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야로 야철지에 철정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나 궁성에 연락을 오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루 이틀이 지나면 다라국 도성에 알려졌다.

신라와 혼인으로 동맹을 맺기 위해서 신라의 양화공주와 혼인해서 낳은 왕자는 신라와 그 동맹이 깨어지면서 부침을 거듭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라국이 신라와 관계가 우호적일 땐 그 존재를 인정받다가도 신라와의 관계가 악화되면 천대받는 신세로 바뀌어야 했다.

가야연맹의 종주국의 태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를 슬퍼하던 그가, 마치 멀리 인도의 석가모니가 그러했듯,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속세를 떠났다는 것이나 악(樂)의 신(神)으로 여겨졌던 우륵이 가라국왕을 배반하고 신라에 투항했다는 소식은 가라국뿐만 아니라 가야 여러 나라에 퍼져나갔고 특히 가라와 맞붙어 있는 다라국에서는 마을마다 거리마다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사람에게 자조와 허무 의식에 빠지게 하고 그것을 모방하려는 풍조를 부추기게 되었다. 다시 봄이 와서 옥전의 선영과 온 산천에 천자만홍이 흐드러진 4월 초하루 진수라니왕이 하루 일을 준비하고 있는 이른 아침, 이수위 무도치가 상기된 표정으로 정전에 들어섰다.

“전하, 말씀드리기에 황송하오나 지금 궁 밖에 소문이 너무 흉흉하옵니다.”

이수위는 심각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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