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교(橋)’ 유감
‘외솔교(橋)’ 유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15 2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시 중구 남외동과 북구 진장동 사이로 흐르는 동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다. 바로 ‘외솔교’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고장 출신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1894 ~1970) 선생을 기리기 위해 붙인 다리 이름이다.

겨레의 큰스승인 외솔이야말로 울산이 아무리 자랑해도 넘치지 않을 어른이다. 그런 울산에서 새로 건립된 다리에 선생의 아호인 ‘외솔’을 다리 이름에 쓴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외솔교’의 ‘교(橋)’자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느껴진다.

중구 동동에 있는 선생의 생가 터에는 ‘외솔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는 선생의 묘비를 볼 수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 장현리에 한힌샘 주시경 선생의 산소와 나란히 있던 선생의 산소 앞에 있었던 것이다. 2009년 선생의 산소가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옮겨지면서 묘비만 이곳으로 옮겨 왔다.

이 묘비 앞면에는 ‘외솔 내외 무덤’이라고 새겨져 있다. 빗글도 모두 한글로 돼 있다.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는 사람들은 묘비를 그렇게 세웠다. 이런 정신을 본받는다면 ‘외솔교’는 ‘외솔다리’로 바꿔 불러야 옳다고 본다.

더 나아가서 선생의 고향인 울산은 다른 어느 고장보다도 ‘한글 쓰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울산에 있는 모든 다리이름에서 ‘교(橋)’자를 ‘다리’로 바꾸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실제로 태화강에 있는 삼호교, 태화교, 울산교, 명촌교를 ‘삼호다리’, ‘태화다리’, ‘울산다리’, ‘명촌다리’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행정에서만 굳이 ‘교’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울산은 달라야 한다.

올해부터 쓰고 있는 ‘도로명 주소’도 좀 이상하다. 이 주소 표기법은 길을 크기에 따라 ‘대로(大路)’, ‘로(路)’, ‘길’로 구분한다. 한글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서야 이런 단계로 구분할 수가 없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15세기에 만들어 널리 쓰게 했다. 하지만 한글은 20세기에 들어서서야 실제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외솔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의 목숨을 건 노력 때문이었다. 외솔 기념관에는 ‘한글이 목숨’이라는 선생의 친필이 전시돼 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았을 때 한글 교과서를 펴내는 일이 가장 급한 일이었다. 다행히 선생의 노력으로 그해 11월에 ‘한글 첫걸음’과 ‘초등국어교본’이 발간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한글에 대한 기초 연구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일제가 한글은 물론 우리말까지 말살시키려 할 때 이루어진 일이다. 조선어학회에서는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다. 이 통일안은 지금 남북한이 각각 쓰고 있는 맞춤법의 바탕이 된다. 이 통일안 때문에 남북의 맞춤법이 지금도 그나마 엇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선생은 1937년에 ‘우리말본’을 완성했고 1940년에 ‘한글갈’을 세상에 내놨다.

공적 또는 사적 출연 재원이 없으면 규모가 큰 연구는 진행되기 어려운 지금 학계의 실정과 비교해 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식민통치를 겪다가 독립한 나라들이 지금도 옛 종주국의 언어를 그대로 공용어로 쓰고 있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오히려 독립과 동시에 고유어를 되찾아 쓴 나라는 오직 우리뿐이다. 그래서 선생은 ‘한글이 목숨’이라고 외친 것이다.

<강귀일 취재1부 기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