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글날을 맞으며
다시 한글날을 맞으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0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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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하신 지 568돌이 되는 해다. 동시에 울산이 낳은 한글연구의 거목 외솔 최현배 선생이 태어나신 지 120돌이 되는 해다. 60년이 세 바퀴나 돈 셈이니 그 의미는 더 한층 각별할 것이다.

그 사실에 주목한 분 중의 한 분이 김정태 시의원이다. 그는 지난 7월 ‘울산광역시 국어 진흥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고 무난한 통과를 이끌어냈다. 전문 15조로 된 이 조례 가운데 오늘은 ‘제4조(진흥계획의 수립) 5항’과 ‘제7조(광고물 등의 한글 표시)’을 특별히 눈여겨보고 싶다.

조례 제7조는 이런 규정을 담았다. “옥외광고물에 표시하는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하여야 하며, 외국 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함께 적어야 한다.”

아직 시행 초기이니 조례가 영향력을 과시하기는 너무 이른 감이 있을 것이다. 이런 선입견을 깔고 지난 주말, 울산의 종갓집 중구, 그 중의 종갓집이라 할 옥교동을 찾았다. 시계탑 네거리를 지척에 두고 ‘먹자골목’과 신신백화점 쪽으로 향했다.

산뜻한 느낌이 먼저 맞아주었다. ‘도롱이네 국수집’! 손칼국수, 잔치국수를 파는 2층집 식당 간판치고 이만하면 으뜸상 감 아니던가. 허브나라, 가람이네, 해바라기도 좋았고 ‘토기장이 하예가’, 하성이불, 금모아. 5번가도 눈에 거슬릴 이유라곤 하나도 없었다. ‘머리하는 집’, ‘아라 눈썹’은 또 어떤가. ‘돈까스 쪼매 아는 남자, 돈까수’는 애교가 넘쳐 보아줄 만했다.

그렇다고 모든 간판들이 하나같이 ‘조례 제7조’의 입맛을 맞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게의 간판 이름에 사연을 적어 넣고 혼을 불어넣으려는 그 마음가짐들만큼은 너무 가상해서 좋았다.

다시 조례 제4조 5항으로 돌아가 보자. ‘진흥계획’의 대상 7가지 항에는 ‘울산 지역어 실태 조사 등 울산 지역어 연구 및 보전에 관한 사항’도 들어있다. ‘지역어’라면 달리 말해 울산 사투리’다. 울산 사투리라면 ‘울산방언’(2000. 1)이란 역저를 남기고 돌아가신 국어학자 조홍제 선생(전 한글학회 회원)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책을 도서관에서나 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섭섭함을 느끼곤 한다.

한데 조례에는 ‘땅이름’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다. 하지만 조례 제4조 3항은 ‘진흥계획’ 대상에 ‘국어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국어문화 유산을 보전하는 일에 관한 사항’도 집어넣고 있다. 말 나온 김에 ‘땅이름’이라면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국장과 대통령 건설교통비서관 직을 지낸 강길부 국회의원이 두 차례 펴낸 ‘땅이름 울산사랑’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저서에는 순우리말로 지은 옛 땅이름들을 수두룩하게 접할 수 있다. 큰골저수지, 학새골, 장구배미, 펀갯들 하며….

그 중에는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에 대한 기록도 있다. 마을 토박이들은 아직도 ‘못 안(마을)’이라 부르는데 관리들이 기록에 남길 때는 굳이 ‘池內’라고 적었다. 조선조에도 그랬고 일제강점 초기에도 그랬다. 새마을, 큰마을 해도 될 것을 애써 ‘新里’ ‘大里’로 표기해야 직성이 풀린다.

다시 한글날을 맞으면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울산광역시 국어 진흥 조례안’이란 탄탄한 방패막이가 생긴 만큼 한글 사랑에 대한 통 큰 포부를 한번 가져보자는 것이다. 아름다운 한글간판 만들기는 물론 순우리말 울산 땅이름 되살리기에도 다 같이 한번 미쳐보자는 것이다.

<김정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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