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미인’의 시대
‘성형미인’의 시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2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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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며칠 전, 편집부 번역 파트에서 넘어온 ‘오륜행실도’의 교열 작업을 마쳤다. 이 책은 1797년(정조 21)에 이병모(李秉模) 등이 왕명에 의해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하여 수정, 편찬한 것으로 옛 활자인 정리자(整理字)로 간행되었다.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 등 오륜에 모범이 된 150인의 행적을 추려 적은 이 책 속에서 유난히 필자의 눈길을 끈 내용은 ‘고행할비(高行割鼻)’였다. ‘코를 베어 버린 고행’이라 번역되어 소개된 열녀(烈女) ‘고행’의 기록은 흥미로움을 떠나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남았다.

고행은 양(梁)나라 때 사람으로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되었으나 딴 곳으로 시집가지 않은 채 수절하며 지냈다. 양나라 양반집 남자들이 고행의 미모(美貌)에 반해 다투어 아내로 삼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임금이 이를 전해 듣고 정승을 시켜 고행을 궁궐로 데려오게 했다. 그러자 집으로 찾아온 정승에게 고행이 말했다. “여자의 도리는 남편을 한번 맞으면 다시 고쳐서는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의(義)를 버리고 부귀를 좇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닙니다.”

말을 마친 고행은 거울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코를 칼로 베어 버리고 나서 말했다. “임금이 나를 데려오라 한 것은 나의 색(色)을 취하려 함이니, 이렇게 코를 베어 형벌을 받은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어디다 쓰겠습니까. 또한 내가 죽지 못함은 어린 자식들이 더 외롭게 됨을 차마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이 말을 전해 듣고는 그녀의 행실을 높이 여겨 부역과 조세를 면제해 주고 그녀의 이름을 높여 ‘고행(高行)’이라 지어 주었다.

이 내용을 접하며, 비록 현 시대의 실정과는 동떨어진 먼 옛날의 고사(故事)이긴 하나, 그 본바탕에 깔려 있는 아내로서의 꿋꿋한 ‘의리(義理)’는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특히 여성으로서는 스스로 행하기 매우 어려운 얼굴 부분을 과감히 훼손, 자신의 굳은 절개를 지켜냈으니 그 비장함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천 년이란 긴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의 여성들은 또 다른 의미의 신체 변형(?) 작업에 한창이다. 이른바 ‘성형미인’으로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열풍에 휩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부 남성도 예외는 아니다.

성형외과를 찾는 이들이 차츰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는 김치보다 ‘성형’이 먼저 떠오르는 성형강국으로 도약했다. 여기에는 성형을 권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한다. 버스와 지하철역을 도배한 성형 광고부터 성형으로 인생을 바꿔준다는 콘셉트의 인기 프로그램까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성이 말살되고 일명 ‘강남성형미인도’라 불리는 새로운 미의 기준이 탄생하면서, 거리에서 똑같이 생긴 사람들을 보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미국 CNN은 미(美)에 있어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된 나라는 한국이라고 단언했다. 이 매체는 “한국에서는 남자도 아이라인을 그리고 성형수술을 한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러한 현상이 시대의 큰 흐름, 또는 유행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겠으나 적어도 성형미인이, 원하는 직장이나 멋진 배우자를 얻는 조건으로만 내세워져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타고난 개성을 중시하고 남과는 무언가가 다른,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도 삶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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