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文解)의 기쁨
문해(文解)의 기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2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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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해의 달’ 9월의 중간문턱을 넘어선 지난 15?21일, 울산시청 본관 1층 전시실은 ‘문해(文解)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 기간은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아니면 여식(女息)에 대한 보수적 가부장의 편견 탓으로, 어릴 적 한글 깨우칠 기회마저 놓쳤던 우리네 할머니들의 ‘못 배운 한’이 한글 해독의 기쁨으로 넘쳐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문해, 위풍당당 삶을 노래하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울산문해교육기관연합회가 주관한 이 행사에는 도산노인복지관, (사)행복발전소 등 9개 문해교육기관에 다니는 ‘어르신 학생들’의 소박하고 진솔한 작품 130여 점이 선을 보였다.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우수상(교육부장관상)을 차지한 여현정 할머니(울산시민학교)는 ‘별’이란 작품에서 못 배운 한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릴 적 나의 모습 속에는/ 검정 고무신,/ 꼴망태만 기억에 남아 있다./ 학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뒷산 바위에 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우는 나에게 어머니는 매를 들었다.…”

으뜸상(울산시장상)을 받은 이상선 할머니(북구 찾아가는 한글교실)는 ‘보인다’란 글에서 문해의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다. “그렇게 두 눈 뜨고도 보이지 않던/ 예쁜 글들이 눈 감고도 드문드문 보인다./ 하늘을 쳐다보면/ 구름만 떠 있더니/ 이제는 여기저기서/ 글이 보인다./ 푸르른 나뭇잎 속에도/ 예쁜 한글이 보이고/ 흔들리는 잎사귀 따라/ 일렁이며 한글이 보인다.…”

비록 상은 못 받았어도 박금순 할머니(울산시민학교)는 ‘찾아갈 수 있다’란 글에서 한글 깨우친 자신감을 이렇게 서술했다. “서울 막내딸 집도 찾아갈 수 있다./ 천안 손주 집도 찾아갈 수 있다./ 두렵지 않다./ 배우기 전에는 두려웠고 무서웠다./ 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힘들고/ 거친 일만 했다./ 글 모르는 것이 들통 날까봐…/ 이제는 두려움 무서움이 없다./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으니.”

학습자 수가 120명 남짓 된다는 울산시민학교의 박순열 연구부장은 한글을 배우러 오시는 분(주로 할머니들)들의 연세에 대해 귀띔했다, “40?50대도 더러 있긴 해도 60대 후반?70대가 대부분”이라 했다. 새터민 출신도 다문화가정 출신도 이따금 학교 문턱을 밟는다고 했다. 문해학습자의 글 한 점을 더 음미해 보자.

강정자 할머니(울산시민학교)는 ‘종착역’이란 글에서 이렇게 심경을 전했다. “일흔이 되어/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눈물샘/ 마를 날이 없었다/ 오직 자식들 커가는 낙으로 살았다/ 이제는/ 눈물 다 닦고/ 숙제 때문에 고민/ 시험 때문에 고민/ 받아쓰기 틀리지 않으려고/ 용쓰는 내 모습을 보면/ 자그마한 행복과/ 건강한 젊음이 다시 온 것 같다/ 배움에 목말라 했던 나에게/ 학교는 샘물이고/ 따사로운 햇살을 안겨준 학교는/ 나의 종착역이다”

울산지역의 문해교육기관은 ‘문해전문’ 교육기관 2곳(울산시민학교, 울산푸른학교) 합쳐 20곳 남짓. 하지만 재정적 어려움은 속 시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울산광역시 성인문해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가 2009년 2월 발효되긴 했어도 유명무실해서 안타깝다는 게 이하형 울산푸른학교 교장의 하소연이다. 이 조례는 당시 제5대 울산시의회 이현숙 의원이 대표로 발의했다.

2010년도 정부 통계에 의하면, 울산시 성인인구의 12.4%가 비문해자(非文解者)로 분류된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부자도시 울산’을 자랑하기에 앞서 그늘진 또 하나의 구석, ‘비문해 지대’에 눈길을 돌려야 할 때인 것 같다.

<김정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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