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품격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1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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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방법원 모 부장판사가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국정원 댓글 사건 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입신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 가득한 판결을 내렸다”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사건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를 비난하는 글을 법원 게시판에 올렸다.

국정원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완전히 만족스럽지 못한면이 있을 수도 있고 국민 법감정에 부합하지 못하는 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혹여 잘못된 점이 있다면 상급심에서 가려질 일이므로 그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다만 판사가 동료 판사의 판결에 대해 비난성 글을 올린 것이 사법부의 신뢰나 품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최근 들어 법정에서 판사의 막말 파동이 심심찮게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다. 법정에서 30대 후반의 판사가 70세 소송 당사자에게 “어디서 버릇없이”라고 말해 지탄을 받은 경우도 있었고, 재판받는 이에게 폭언을 했던 판사가 국민인권위원회로부터 주의조치 권고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필자도 법정에서 판사의 부주의한 언행으로 심각한 상처를 경험한 기억이 있다. 법관의 언행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하고 조서에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변호인인 필자의 느낌이 이러하다면 판사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일반인들이 체감하는 상처는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누구든지 국정원 사건 판결에 대하여는 평가할 자유는 있다. 동료 판사라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자유를 박탈할 수는 없다. 법관윤리강령도 교육이나 학술 또는 정확한 보도를 위해선 구체적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정원 사건 판결에 대해 교육이나 학술적 측면에서 비판적 평석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판사라고 해서 명예훼손 성격의 사실을 게재해 인격적 비난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언론출판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판사가 재판받는 이들에게 폭언을 할 자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일이 사법부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도 없다. 동료 판사의 판결에 대한 인격적 모독이나 재판받는 이들에 대한 법정 폭언은 모두가 당사자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점에서 결코 다르지 않다.

동료 판사의 판결에 대해 의견이 있는 경우, 학술지에 판례 평석을 하고 정당한 논리로 반박하였다면 좀 더 품격있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막말하는 판사가 아니라 품격과 소양을 갖춘 판사가 재판받는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최근 일본에서 판사로부터 폭언을 들은 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소송활동을 제한한 판사의 감정적인 발언이 있었다고 인정된다”면서 국가의 위자료 지급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점차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판사라 할지라도 재판받는 사람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없고, 판사라 할지라도 동료 판사를 인격적으로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법부의 신뢰와 품격은 사법부에 종사하는 판사들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사법부의 신뢰와 품격은 사법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평가하는 것이다. 사법부가 사법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의 평가를 무시한 채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때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영화 ‘명량’에 나오는 대사 한마디를 인용해 주고 싶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장문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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