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에 대한 소고(小考)
‘中年’에 대한 소고(小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1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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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가 당시 64세의 배우 해리슨 포드를 중년이라 지칭해 독자에게 질책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독자는 “64세가 중년이면 128세까지 살 걸로 기대해도 되냐”며 60대나 심지어 70대를 중년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산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현대의 중년을 40세와 68세 사이에 위치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조차 애매한 것이, 수명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중간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원숙함이 존경을 받아, 배심원이 되려면 50세가 넘어야 했다. 고대 그리스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서른 살이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정말 오래 산 행운의 영혼이어야 중요한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 1세기 전만해도 선진국의 평균수명이 47세였지만 지금은 80세에 육박해 있고 100세 인생을 기준으로 각종 플랜이 세워지고 있다.

최신 과학이론에 의하면 중요한 뇌기능들에 심각한 결함이 생기는 일은 70대 후반까지, 또는 훨씬 너머까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동안 신체기능과 뇌의 활동이 나이와 함께 쇠퇴해 가는 것으로 생각하게끔 훈련받아 왔다.

사실 신체변화는 부인할 수 없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식생활을 조절해도 날씬한 몸을 기대할 수 없는 때가 중년이고 독서, 운전, 컴퓨터 이용을 위해 ‘세 가지의 초점이 다른 안경’이 필요한 때도 중년이다. 모발색상도 염색 없이는 더 이상 선명하지 않고 얼굴에는 골이 깊어지기 시작하며 살집은 어쩔 수 없이 중력 방향으로 힘없이 흘러내린다.

과학자들도 인간의 뇌가 중년으로 가면서 신경전달물질들이 뚜렷이 줄어들고 뉴런들이 소통하는 자리인 뇌의 가지들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래서 중년의 뇌가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직업은 생각해 내면서도 이름을 기억 못하는 등 소위 ‘처리속도’를 원활히 유지 못한다는 데는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름을 빨리 기억해내는 능력이나 뇌가 최고 속도를 내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삶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회학, 연구자들에 의하면 중년의 뇌가 반드시 중년의 몸과 같지는 않으며 쇠퇴하는 기능이 있는 반면 능력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절정에 다다르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이름을 기억하는 부품들은 확실히 닳지만 동시에 주위 세상, 즉 사람과 일 그리고 재정에 관해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은 더 강해진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중년의 뇌가 오랜 시간 축적된 스키마를 활용해 층층이 서로 얽고, 연결망을 견고히 형성하는 덕분에 여러 가지 생활 속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결사가 필요 없게 되는 시점이 중년인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중년으로의 진입이 더 행복한 시간으로 가는 여정임이 발견되기도 했다.

각별히 힘들거나 압박감에 시달리는 순간에는 그렇지 않겠지만 중년 무렵에 우리는 더 행복해 지기 시작한다. 세상을 보는 방식에서 긍정적인 것이 부정적인 것을 이기는데, 중년의 뇌가 경험의 집적, 이해와 통찰을 경험하며 긍정적인 쪽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침착한 중년의 인간이 처리 속도가 너무 빨라 불안정한 사회와 맞닥뜨리며 질풍노도에 휩쓸리기 쉬운 작금의 젊은이들을 훌륭히 도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나경 약사고 교사/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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