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와 스커트
스피치와 스커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1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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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스피치(speech)와 스커트(skirt)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이들이 있다. 여성분들에겐 외람된 얘기겠지만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어느 필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하나 올렸다. ‘커뮤니케이션 불변의 법칙’이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글이었다. 글의 일부를 인용해 보자.

“학교에 다닐 때 교장 선생님의 연설을 들었다. 듣고 돌아서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왜 그럴까? 너무 길게 말을 하고, 한 번에 많은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메시지가 짧을수록 그 속에 들어 있는 의미는 더욱 커진다. 많은 말보다는 필요한 말을 필요한 만큼 해야 된다. 짧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길게 늘여 쓰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짧으면서 핵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 필자는 글의 말미에 책 속의 문장 한 줄로 지론에 마침표를 찍었다. ‘적당한 길이’에 대한 주문이었다. “연설은 여성의 미니스커트와 같아야 합니다. 적당히 길어서 중요한 주제를 커버해야 하고, 적당히 짧아서 주목을 끌어야 하지요.”

스피치를 적당히 짧게 하기로 이름난 분은 울산시의회 의장을 지낸 서동욱 남구청장이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의장 시절 그는 비서진이나 문장사에게 늘 ‘적당히 짧은 문장’을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사장에 참석한 다른 기관장들이 비교적 길게 소견을 마치고 나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을 먼저 하신 분들이 대부분 다 하셔서”라는 말로 양해를 구하며 ‘짧은 스피치’를 즐기곤 했다.

짧아서 좋은 것을 굳이 스피치 즉 연설 쪽에만 가두어둘 필요는 없지 싶다. 문장도 매한가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르포 기사나 소설이 아닌 일반 문장이라면 엿가락 뽑듯 애써 길게 늘어뜨릴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렌즈의 초점을 잠시 ‘지방의원들의 문장’ 쪽에다 맞추어 보자. 시간이 정해져 있는 4~5분짜리 ‘자유발언’이라면 그리 괘념할 바는 못 된다.

하지만 ‘서면질문’이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특히 ‘서면답변’을 반드시 적어내야 하는 집행부 담당 주무관들의 고민은 서면질문의 길이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물어본 일은 없지만, 길게 써준 서면질문에 짤막하게 답변했다가는 언제 어느 때 ‘괘씸죄’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행부의 서면답변은 지방의원의 서면질문에 딱히 정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산시의회와 울산시 또는 울산시의회와 울산시교육청 사이에 오가는 서면질문과 서면답변의 길이를 예로 들면, 거의 예외 없이 함수관계가 성립된다. 질문이 길면 답변도 그 분량만큼 길어지기 마련인 것이다.

기사를 작성하는 출입기자들도 비슷한 고민에 빠질 때가 있는 모양이다. 지나치게 긴 서면질문이나 서면답변은 거들떠보기조차 싫을 때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연애나 연설과 마찬가지로 문장에도 ‘기법’이란 게 있다. 긴 문장을 선호하는 사람은 대체로 이러한 기법을 잘 모르거나 ‘과시욕구’가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란 지적도 있다. 자신의 풍부한 식견을 과시하면서 상대방을 눌러 덮으려는 욕구가 지나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김정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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