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權威)에 대하여
권위(權威)에 대하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1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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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쟁이란 이름으로 치러진 거대악에 국민들은 주권을 잃기도 하고, 이방민족에 합류되기도 했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반도에도 900번이 넘는 외세의 침략과 내전이 있었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에게 외교적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리고 있다. 게다가 분단국가의 흥망을 좌우할 치열한 대치상황에서 북한과 겨루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위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란 특급열차는 바른 궤도를 달리고 있는지 의구심에 잠 못들 때가 많다.

주지하다시피 국가의 구성요소는 영토와 국민과 주권이다. 이 영토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의 이름을 얼마나 손꼽을 수 있는가. 이름표 하나 없고 군번줄도 없이 사라진 무명의 용사들에게 얼마나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는가. 그렇게 수많은 선조들과 선배들의 순국으로 우리는 자유가 바람처럼 유유자적 휘돌아다니는 대한민국이라는 영토를 누리고 있다.

역사 속 국민들은 임금이 바른 정치를 펼칠 때는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연명했건만 권문세가(權門勢家)들이 설쳐대고 부정부패가 만연할 때는 끼니 잇기도 어려운 세월을 살았다. 이 땅에서 국민들의 주권이 언제 한번 화려하게 펼쳐진 때가 있었던가. 그나마 지금이 가장 화려한 자유의 시절이 아닌가 여기며 감사하는 세월이다. 주권이 이만큼 발현하고 꽃피기는 전대미문일 것이다.

서기 30년 나사렛 예수가 출현한 이스라엘에는 네개의 분파로 사대별(四大別)할 수 있겠다. 바리새파는 종교지도자들이 주축이 된 한 분파요, 사두개파는 제사장들처럼 성직자들로 구성된 한 분파요, 엣세네파는 세례요한처럼 수도원적 경건주의를 표방하는 한 분파요, 열심당원은 정치적 목적 성취를 위해 폭력도 불사하는 정치적 한 분파였다. 그 네 개 분파가 추구한 어떤 것으로도 식민지배하는 로마를 깨트릴 수 없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서기 70년에 완전히 멸망했다. 그들이 국권을 다시 회복하는 데는 2000년의 세월이 소요됐다.

어느 날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물었다. “나사렛 예수여, 당신은 로마 황제 가이사(Caesar)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하겠소?” 그 질문은 로마 황제에게 모든 사람들이 바치는 인두세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곤궁에 빠뜨리는 질문이었다.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말하면 식민지배 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고, 바치지 않아야 된다고 말한다면 자칫 황제에게 반역을 하는 무리로 낙인찍힐 수 있는 일이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나사렛 예수는 본질적이고 지혜로운 답변으로 단견의 그들에게 대의를 가르쳤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월호 사건을 두고 이런 곤궁한 처지에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의 마지막 화살은 대통령에게 향한 채로. 필자가 판단하기로는 잘못된 일이다.

비가 잦아 빨래 한번 널기에도 하늘을 몇 번씩 쳐다보게 되는데, 나라 통치하는 일이 어찌 쉽기만 하겠는가. 영토가 소중한 만큼 국민들도 중요하고, 국민들의 주권이 소중한 만큼 국가 최고지도자의 권위는 중요하고 특별하다. 유사시 전쟁이 발발할 때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최종 결정권자이며, 외교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얼굴로 세계를 누빈다. 결혼도 포기했다. 대한민국과 결혼했다고 선언했다. 그런 대통령에게 추석 송편 잘 드셨는지 한번 여쭤보고 싶다.

<박정관 굿뉴스 울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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