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떠난 자리… 아름답기보다 더러워진 곳 더 많아”
“인간이 떠난 자리… 아름답기보다 더러워진 곳 더 많아”
  • 정종식 기자
  • 승인 2014.09.0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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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깨끗한 세상 대표… 청소용역, 정직한 땀의 대가-청년창업 기대해 볼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 가서 세탁업, 청소, 파출부 일을 많이 합니다. 미국에선 10대 인기직종에 청소용역업이 포함 됩니다. 우리는 아직도 3D 업종으로 취급해요. 이런 인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그가 청소대행업에 뛰어든 건 재미교포 2세가 직원 1천여명을 거느리고 현지 청소업체를 운영하는 특집기사를 TV에서 본 뒤였다고 한다.

뷔페 주방장을 11년 동안이나 했으니 손님들이 떠난 뒷자리를 청소하는데는 그도 이력이 날만큼 나 있었다. 청소만큼은 자신 할 수 있다 싶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마침 모 업체가 떴다. 그 업체는 전국 최고 청소업체로 연매출 1백억원대에 이를 정도였다. “이건 뭔가 있다 싶어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몇 달 무보수로 일하고 내 돈으로 먹고 자며 일을 배웠죠. 하지만 체인점을 열려면 가맹비가 필요 했습니다” 그때가 2007년이었다.

하지만 1997년 IMF로 수억원의 빚을 진 뒤 뷔페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겨우 빚을 가리고 난 터 인지라 4천300만원은 그에게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할 수 없이 울산대 영문과에 합격해 등록한 장녀의 등록금을 환불받았다. 그는 살면서 이때가 가장 괴로웠다고 한다. 또 주변 지인들에게 1천만원을 빌려 1천5백만원을 들고 서울 본사로 찾아가 ‘외상 각서’를 작성하자고 했단다. 업체 대표는 “내가 사업을 시작한 뒤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봤다”며 체인점을 내 줬다고 한다.

개업한 첫 달, 3백만원 매출을 올리고 6개월 만에 1천만원을 기록했다. 새벽 4시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6시부터 전단지를 붙이러 다녔다. 6시40분부터 일을 시작하면 해 질 때까지 청소를 했다. 그래서 그는 1년 만에 ‘외상값’을 다 갚았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개업 3~4개월이 지나자 불이 붙기 시작 했죠” 2년차에 접어들면서 계약업체가 100개를 넘어섰고 7년차인 올해는 350개 업체와 고정적으로 청소대행업을 계약한 상태다. 울산의 약 400개 청소업체 가운데 고정적인 거래업체를 100개 이상 가진 곳은 15곳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20여명의 고정 직원을 채용하고 있는 곳은 ‘깨끗한 세상’이 유일하다고 한다. 2008년 남구 신정동에서 ‘깨끗한 세상’이란 청소용역업체를 연 이응준 대표(54·사진)이야기다.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비법이 뭐냐고 묻자 ‘청소용역 업체는 3D 업종이 아니다. 전문성을 갖춘 과학적 업체여야 한다’고 했다. 청소할 대상에 따라 세제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 성분 물체에 산성세제인 ‘락스’를 사용하면 당장 부식된다고 했다. 신축건물 바닥에 깔아 놓은 대리석이 누렇게 변색된 것도 청소세제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청소의 가치를 건물주에게 자세히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란다.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1년차 계약을 맺었던 업체들이 7년 동안 계속해서 일을 맡기고 있다. 그 수가 전체 계약업체의 80% 이상이다.

“대도시에선 20대들이 이 업종에 뛰어들어 창업하고 있습니다. 울산은 그런 곳에 비해 15~20년은 뒤쳐져 있어요. 미국과 비교하면 40~50년 뒤졌고요” 그는 청소업이야 말로 젊은이들이 한번 도전해 볼만한 대상이라고 했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 열심히만 하면 40대에 들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소자본으로 손쉽게 창업할 수 있고 노력한 만큼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고도 했다. “요즘 대기업 사원들은 50대만 되면 명퇴·조퇴 당합니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이것저것 하다가 다 날리고 알거지 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런데 왜 앞날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이 머리를 싸매고 대기업에만 들어가려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 대표는 구인광고에 ‘20대가 가능한 일’이라는 문구를 반드시 넣는다.

하지만 아직도 청소용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청소 용역은 사회적으로 무식하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하는 게 아니라 ‘정직한 땀의 댓가’를 받는 일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 전문직종이라고 한다. “얼마 전 대기업에서 33년 동안 일하다 퇴직한 분이 찾아왔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퇴직금으로 놀기 삼아 청소업을 시작해보겠는 거예요. 그래서 인식전환부터 하지 않으면 실패한다며 돌려 보냈습니다.”

 

▲ 이응준 대표(가운데)는 직원들과 함께 직접 작업한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젊은 시절엔 오락가락하다가 삶이 어려워지면서 종교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 대표도 한 때 고향 안동에선 잘 나갔다. 명함 뒤쪽에 감투를 빼곡이 새겨 넣을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1994년 한창 외국어 바람이 불 때 외국어학원을 경영했다. 그러다가 ‘안동 찜닭’의 원조인 큰 누나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찜닭 집을 했다. 그런데 어제까지 ‘형님’이라고 했던 건물 주인이 갑자기 건물을 비워달라더란다. 그리고 자신이 그곳에다 찜닭 집을 차리더란다. 인간에 대한 환멸과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회의로 1997년 ‘이역만리 울산’으로 떴다.

빈털터리로 왔으니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그래서 그는 남구에 있는 모 뷔페 종업원 자리에 지원했지만 나이가 많다고 거절당했다. 그래서 그는 업주를 6번 찾아갔다. “결국 내가 이긴 거죠. 일 시켜보고 돈 달라고 했습니다. 적게 주면 나갈 줄 알고 첫달 월급을 90만원 주저라고요. 더 열심히 했죠. 다음달엔 100만원을 주데요” 그렇게 4개월이 지나자 업주가 능력을 인정했다. 마침 이 대표는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이 있어 이것을 돌잔치나 회갑잔치에 오는 고객들에게 활용했다. 뷔페 매출이 급신장했다. “당시 사장님은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주로 주방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손님들은 밖에서 설치는 저를 사장으로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학원원장에서 찜닭 집 주인, 뷔페 종업원에서 지배인을 거쳤으니 인간 세상에서 쓴맛 단맛을 다 본 셈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도 신자가 몇 안 되는, 처음 시작하는 ‘개척교회’를 택했다. “배고픈 사람에겐 라면 한 그릇이 중요하지만 배부른 사람들에겐 진수성찬도 성에 차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중구 우정동 언덕배기에 있는 ‘개척 교회’에 다닌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요즘은 해 뜨면 나와서 날 저물면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지낼 수 있으니까요. 이게 바로 하느님의 섭리 아닙니까” 지난날 사업할 때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해가 허공에 달렸을 때 일터에 나왔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가장 노릇을 못했다고 한다.

“진흙탕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은 평지의 고마움을 모릅니다. 평지는 찬국입니다” 그래서 그는 1년에 3~4회 간증집회에 나간다. 자신이 살아온 삶은 하느님이 그렇게 인도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집회를 마치면 사례비를 주지만 사양하고 오히려 헌금한다고 했다.

“인간이 떠난 자리는 아름답기보다 더러워진 곳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자리를 아름답게 청소해야 합니다. 인간이 안락하게 존재하려면 청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앞으로 전문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해 질 겁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이 창조한 세상을 날마다 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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