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다이어트’
‘말의 다이어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31 1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말을 말까) 하노라.” 말조심하자는 경구다.

말 몇 마디 때문에 낭패 본 사람은 의외로 많다. 국회의원 시절 불특정 다수의 여성 아나운서를 술안주 삼아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던 강모(45, 방송인)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든든한 백그라운드 덕분인지 무죄 선고를 받아 쥐긴 했지만 사회적 창피를 깨끗이 지울 길은 없어 보인다. 지난 30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잠시 인용해보자.

“29일 오전 10시, ‘성희롱 발언’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이 열린 서울서부지법 303호실. 법정에 선 강 전 의원을 향해 제2형사부 오성우 부장판사의 준엄한 훈계가 떨어졌다. 강 전 의원은 2010년 대학생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여성 아나운서들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한 혐의(모욕 등)로 기소됐다. 자신의 발언을 보도한 기자를 ‘허위 기사를 작성했다’며 무고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이 기사에 따르면 재판부는 모욕 혐의만은 원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발언은 여성 아나운서 일반을 대상으로 했으며, 개별 구성원들에게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돼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만 무고 혐의는 유죄로 판단해 벌금 1천500만원을 선고했다.

한데 그 뒷얘기가 훨씬 더 재미있다. 오 부장판사는 강 전 의원에게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해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는 불교경전 ‘숫타니파타’의 경구를 인용하며 이런 말을 던졌다. “피고인은 국민의 여론에 감시되는 사회적 감옥에 수감됐다. 감옥에서 석방되려면 저질스럽고 정제되지 않은 말의 다이어트, 성형이 필요하다.”

무성영화가 주름을 잡던 시절, 우리 영화계의 히어로는 단연 ‘변사(辯士=silent-film narrator)’였다고 해서 지나치지 않을 성싶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관객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으니까. 그만큼 말의 효용가치는 무궁무진한 법이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신·언·서·판(身言書判), 이 네가지였다. 말씨(언변)가 들어갔고 글씨(필적)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데 조리 있는 말씨라면 나이 든 경상도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없다. 말 잘하는 경인(京仁)지방 사람들에 비하면 십리는커녕 오리도 따라갈 자신이 없다. 고백컨대 필자부터가 그렇다. 말씨 훈련은 어릴 적부터 어른들의 관심 밖이었고, 그러기에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고 경제적인 말씨의 훈련이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경상도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씨가 마치 사생결단이라도 하듯 싸우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억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말의 높낮이와 어조로 치면 경상도 말씨와 비슷한 일본의 표준어- 도쿄 말씨(東京語)가 아귀다툼으로 들리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노릇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대중의 심금을 울리고, 품위 있는 말씨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내 것,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밥상머리 훈련과 책상머리 교육에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 같다. 오 부장판사가 요구한 ‘말의 다이어트, 말의 성형’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주 선임기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