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梁夫 시조는 북방 유목민”
“高梁夫 시조는 북방 유목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1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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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14일 제주도 일원에서 진행된 울산시의회 의원 연찬회에 합류한 것은 지적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한 호기심은 현지 관광안내사(가이드) 김향선(47)씨와 문화관광해설사 고태립(66)씨가 상당부분 채워주었다. 특히 40대 여성 김향선씨의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비판의식은 여느 향토사학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김녕굴이 가까이 있는 제주도의 동쪽, 북제주군 구좌읍의 ‘김녕마을’. “제주도는 옛날부터 지역차별이 참 심했어요.” 그녀에 따르면 척박하고 물자가 귀해 살기가 힘들고 기질이 드셌던 동쪽 출신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찾아간 전라도 시댁 어머니가 며느릿감을 애써 외면했던 것도 실은 ‘제주도 동쪽’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교수들도 그렇지만 똑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고 향토학자마다 주장이 달라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보고 배운 것이 무조건 옳다는 선입견 탓이죠.” 그녀의 설명은 거침이 없었다. “제주도는 지역에 따라, 동쪽이냐 서쪽이냐 남쪽이냐에 따라 사투리도 다르고 생활풍습도 다 달라요.”

그녀의 해설 중에는 귀가 솔깃한 얘기들이 의외로 많았다. 제주도민의 3대 조상이라는 고(高)씨, 양(梁, 이전엔 良)씨, 부(夫)씨의 시조에 대한 유래 설이 특히 그랬다. 제주시 이도동에는 널리 알려진 ‘삼성혈(三姓穴)’이란 사적지가 있다. 세 성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바로 그 성지(聖地)다.

한데 ‘땅속에서 솟아난 신들의 자손’이라는 통설에 이의를 제기한 학자가 나타났다. 제주대학교의 K교수라 했다. “관광안내사협회의 초빙강의 때 그 교수님이 말씀했어요.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새 학설이 세상에 공개되면 세 성씨의 후손들한테서 욕을 어마어마하게 먹을 것이라고요.” 신화의 영역에 메스를 들이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녀가 간추려 전한 고씨, 양씨, 부씨의 조상에 대한 K교수의 새로운 해석인즉 이랬다. “부족장을 일컫는 ‘고을나’ ‘부을나’ ‘양을나’가 땅속에서 솟구쳐 나왔다는 설은 과학적인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세 성씨의 조상이 고구려 유목민의 후손, 부여 유목민의 후손, 중국 양맥(梁貊, 옛날 梁水)족 유목민의 후손이라고 본다. 그들은 같은 시기에 나라가 망하면서 제주도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K교수의 추론인즉 고구려의 후손은 고씨 성을, 부여의 후손은 부씨 성을, 양맥족의 후손은 양씨 성을 갖게 됐을 것이라는 것, 김향선씨가 지신의 소견을 말했다. “그 얘기를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고 신빙성이 있는 것 같아요. 땅속에서 사람이 갑자가 솟아나 마을을 이룰 수는 없잖아요?”

그녀는 제주도 사람들의 과거사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냥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주견을 지니고 있었다. 옛 제주도민들의 애환에 대한 얘기보따리도 풀어놨다.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아는 ‘막스’라는 외국인이 질문을 해 왔어요. 제주도는 어떤 시기가 가장 힘들었느냐고요. 한참 머뭇거리다 답했죠. 지금은 아니지만 살기는 일제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이에요.” 제주사람들한테 특혜를 줘서가 아니라 육지 사람이나 제주도 사람을 똑같이 대우해 주어서였다고 했다.

그녀는 ‘출륙(出陸)금지령’이 내려진 조선시대가 오히려 살기 힘들었다고 증언한다. 의외로 많았던 탐관오리들이 임금님 진상품 말고도 제 배를 채우려 제주백성들을 달달 들볶았다는 것. ‘3대가 먹을 것 착취해 가는 데 3년밖에 안 걸렸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로.

<김정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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