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사과보다 상자에 눈을 돌려야
썩은 사과보다 상자에 눈을 돌려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1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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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 짐바르도 교수는 특이한 실험을 했다. 비교적 좋은 인성을 지닌 대학생 24명을 선발한 뒤 두 부류로 나누고 각각 죄수 역과 교도관 역을 수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14일간 일정으로 시작된 이 실험은 단 6일 만에 끝내야 했다. 실험이 시작된 지 오래지 않아 간수들은 죄수들을 갖가지 기발한 방식으로 괴롭히기 시작했으며, 죄수 역을 맡은 이들은 극도의 신경 이상 증세를 보이는 등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간수들은 죄수들에게 맨손으로 변기를 닦게 했고, 온갖 굴욕적 행위를 강제했다. 건강한 청년들로 선발된 죄수역의 학생들이었지만 5일 만에 스트레스가 극심해져 5명은 신경쇠약 증세까지 보였다.

짐바르도 교수는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의 악한 행동은 개인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면도 있지만, 악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상황과 시스템의 영향이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상황과 시스템이 인간의 양심과 이성의 기능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마저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죄수를 통제해야 하는 시스템, 그리고 이들에게 가하는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묵인되어 온 상황, 그런 시스템과 상황 속에서는 건전한 품성을 지닌 이들도 쉽게 고문을 가하고 가혹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뒷날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이라크 포로들에 행해진 미군 병사들의 엽기적인 가혹 행위가 드러났을 때 짐바르도 교수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이 현상을 설명한 바 있다. 당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도대체 어떤 병사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라고 물었을 때 짐바르도 교수는 그것이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썩은 사과인가’를 물을 것이 아니라 ‘무엇이 원인인가를 물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썩은 사과가 문제가 아니라 사과를 썩게 만든 상자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짐바르도 교수의 논리였다.

최근 우리 사회는 군대에서 선임병의 가혹행위로 숨진 후임병의 사건을 두고 큰 충격이 빠져 있다. 가혹행위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수많은 이들이 치를 떨었고, 언론은 ‘군대에 악마가 있었다’는 머리기사를 실었다. 정말 그는 악마였을까? 한 매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악마와 같은 가혹행위를 저지른 그 선임병 또한 얼마 전까지 군대 폭력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군대를 갔다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결코 낯설지 않다. 후임병에 대한 선임병의 가혹행위가 ‘군기 잡기’의 명목으로, 또는 ‘얼차려’라는 이름으로 묵인되거나 더 나아가 오히려 자랑스러운 문화로 대물림돼 왔다. 이런 관습적 시스템에서 이런 사고는 반드시 발생하게 돼 있으며 앞으로도 예고돼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가운데 전군에 실시되는 군대 인성교육은 그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인성교육을 실시하던 한 최고급 지휘관이 이른바 ‘관심 병사’를 가리켜 “그런 애는 덜 맞아서 그렇다”고 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인되지 않으나 관습적으로 묵인되는 곳이 있다. 바로 군대와 학교이다. 선임병의 후임병 군기 잡기는 학생에 대한 교사의 훈육 방식보다 훨씬 극악한 모습이지만, 이 권력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관습적 시스템의 상자는 학교의 체벌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한다. 오늘도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자신을 훈계하던 중학교 3학년들에게 가슴을 맞아 숨졌다는 보도가 올라 와 있다. 이 폭력적 관습의 상자를 바꿀 수 있는 곳은 학교일 것이며, 그 비폭력의 문화 혁명은 ‘지나치게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교사들’이 회초리를 내려놓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서상호 효정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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